儒林(352)-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儒林(352)-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입력 2005-05-25 00:00
수정 2005-05-25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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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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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원작자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팔괘는 옛날에 복희씨(伏羲氏)가 만들었다고 전해오며, 이를 64괘로 중괘한 사람은 주나라의 문왕이라는 설이 유력하다.64괘의 각 효(爻), 즉 384효에 이르는 효사(爻辭)는 주공(周公)이 지었다는 설도 유력하다.

어쨌든 역경은 점책으로 주나라 초기에 완성되었으므로 흔히 ‘주역(周易)’이라고 불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성인 공자가 한갓 점술책인 주역에 그토록 심취하여 책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정독하였을까. 그것은 주역이 한갓 점책이긴 해도 공자가 이상적인 인물로 사숙하고 있었던 주공이 효사를 지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논어에는 공자가 만년에 다음과 같이 탄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심히도 내가 노쇠하였구나. 오랫동안 나는 주공을 다시 꿈속에서 보지 못하고 있으니.”

주공은 주나라 건국의 공신이며, 문물제도의 창제자였다. 공자는 언제나 이 주공을 꿈꾸며 주공이 제정한 문물제도를 자신의 시대에 새로이 살려내려 했던 것이다. 이처럼 공자는 자신의 이상을 주공에게 걸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주역은 점책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원리를 논하자면 자연히 우주론에서 시작하여 자연의 섭리, 만물의 기원, 인생론, 음양론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송대에 이르러 만물의 근원이나 자연의 원리로 공자의 학문을 연구하는 성리학이 발전하고부터는 역경은 자연 유가의 철학을 논하는 중요한 경전으로 크게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퇴계는 그야말로 침식을 잊고 고찰에 틀어박혀 주역을 읽고 또 읽었다. 퇴계 역시 점을 치는 복신이나 미신에 관심이 있어 주역을 공부했던 것이 아니었다.

퇴계는 평소에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미신행위에 대해서 단호할 정도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언행록 가훈(家訓)편에는 퇴계가 아들 준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는데, 그 편지 중의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또 들으니 무당들이 자주 집을 드나든다는데 이것은 우리 집의 가법을 매우 해치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대부터 전혀 미신을 숭상하지 않았고, 또 나도 늘 그것을 금하여 그들이 드나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었는데, 이것은 다만 어른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것뿐이 아니라 감히 가법에 어긋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네가 어찌 그 뜻을 모르고 가벼이 고쳐서야 될 일이겠느냐.”

이처럼 미신을 혐오하였던 퇴계가 20살의 젊은 나이 때 산사에 들어가 지병을 얻을 정도로 주역에 몰두하였던 것은 이미 우주의 모든 현상을 음과 양의 태극으로 보는 소강절의 태극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아 자연적으로 우주론에서 시작하여 모든 자연의 섭리를 다루고 있는 주역에 깊은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전에 퇴계는 제자들과 더불어 이따금 주역을 통해 점을 치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퇴계가 종명하던 날 선조 3년(1570년) 12월8일 아침.

퇴계의 제자들은 모여서 주역을 통해 스승의 운명을 점쳐 보았다고 한다.

이때 나온 점사는 군자유종(君子有終), 이 점사야말로 퇴계의 인생행로와 그 후광을 잘 알아맞힌 기막힌 점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05-05-2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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