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사고’라고 했던가?‘제발 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게 하소서.’작년 늦여름 어느 날, 나는 사랑의 ‘교통사고’라도 나기를 바라며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 대학교 남자동기가 학교 선배이자 직장 선배인 그를 소개해 준다고 했을 때 남자들이 소개해 주는 사람들은 언제나 기준 미달, 함량 미달이기 때문에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계속되는 친구의 요청에 이번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옅은 희망을 품고 끝내는 승낙하고 만 것이다.
이미지 확대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늦는다는 성의없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는 멀리서부터 웃으며 걸어오는 저 사람!그가 내 앞에 앉는 것이 아닌가?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최대한 호의적인 미소를 띠고 앉아 지루하게 얘기를 듣고 있는데 얘기를 하면 할수록 이 사람에게 꿈이랄까, 인생의 목표랄까, 철학이랄까 아님 멋이라고 할까…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느끼지 못한 낯선 단어들이 떠올랐다. 스물여덟인데도 결혼할 기미는커녕, 연애할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나에게 주위 사람들은 소개팅에 나가면 무조건 눈 딱 감고 세 번만 만나보라고 충고를 해 오던 터였다. 그럼 이 사람도 세 번만 눈 딱 감고 만나볼까?
두번째 만남은 곧 이루어졌다.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는 평범한 데이트를 했는데 도무지 재미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헤어진 뒤,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중에 진한 농담을 던지는 짓궂은 기사를 만나 ‘납치의 위험’까지 느낀 나에게 그날은 악몽으로 기억되었고 이후에 걸려오는 모든 연락에 답하지 않았다. 영문도 모르는 그는 답답했겠지만 내겐 그런 배려심은 없었다.
늘 그렇듯 그저 그런 소개팅으로 막이 내리는가 싶었다. 때마침 나는 부서가 바뀌어 업무에 적응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2주간의 공백기간 동안 시적 표현을 담아 문자를 보내는 그에게 마음이 조금씩 움직여 세번째 만남이 이루어졌고 열번째 만남이 있던 날 그는 나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느닷없이 이뤄진 프러포즈였지만 그의 말에 진실이 느껴졌고, 만남이 지속되면서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져 스무번째 만남에서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유난히 기억력이 좋은 남편과 메모하기 좋아하는 나의 성격 덕분에 만날 때마다 몇번째 만남이라고 세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는 여든일곱번째 만남을 끝으로 매일 함께할 수 있는 부부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확신한다. 지난여름 서로가 34년 동안,28년 동안 찾아 헤맨 잃어버린 반쪽을 만났음을, 그래서 온전한 원이 되었음을, 그래서 이 세상을 향해 함께 힘차게 굴러 나갈 거라는 것을.
2005-03-31 3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