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퇴계는 이처럼 옥순봉을 지정함으로써 ‘단양팔경’을 완결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재미난 에피소드가 전해오고 있다.
원래 옥순봉은 단양의 소속이 아니고 청풍의 괴곡리였다.
아슬아슬한 경계선상에 있었으나 청풍땅이 분명하였으므로 이퇴계는 직접 청풍부사를 찾아가 옥순봉이 있는 괴곡리를 양보해줄 것을 청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거절당하는데, 이퇴계는 빈손으로 돌아오면서 그 경계에 다음과 같이 각명(刻銘)하였다.
“단구동문(丹邱洞門)”
단구는 단양의 옛 이름이고, 이 각명의 뜻은 ‘신선으로 통하는 문’이라는 뜻이었으므로 훗날 청풍부사가 남의 땅에 군계를 정한 자가 누구인가를 알아보려고 옥순봉을 찾았다가 다름 아닌 이퇴계가 쓴 글씨임을 뒤늦게 알고 옥순봉을 단양에 양보함으로써 마침내 ‘단양팔경’이 완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퇴계는 비록 9개월밖에 머물지는 않았지만 단양이 신선이 사는 동네이며, 신선으로 통하는 문으로까지 극찬하며 사랑하였다.
오늘날 단양에는 이퇴계의 친필이 두 점 남아 있다.
하나는 천변의 바위 위에 새긴 ‘탁오대(濯吾臺)’란 각자이고, 또 하나는 그 옆 바위 위에 새겼던 ‘복도별업(復道別業)’이란 글자이다. 이 두개의 유물은 댐 공사로 인해 수몰되어 물에 잠길 위험이 있자 수습되어 지금은 따로 전시되어 있는데,‘자신을 씻는 바위’라는 뜻의 탁오대란 문장과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도를 이룬다’는 뜻을 지닌 ‘복도별업’이라는 각자를 통해 이퇴계가 이곳에 자연풍경을 얼마나 사랑하였던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일찍이 초나라의 굴원(屈原)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강에 빠져 자살하였는데, 그는 죽기 전 ‘어부사(漁父辭)’란 비장한 노래를 남긴다.
죄 없이 추방당하고 자살을 결심하고 강가를 초췌한 모습으로 거니는 모습을 보고 어부가 ‘무슨 일인가’하고 묻자 굴원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온 세상 모두가 흐려져 있는데/나 혼자만이 맑고 깨끗했으며/뭇 사람들 모두가 취해 있는데/나 혼자만이 맑은 정신 깨어 있어서/그만 이렇게 추방당한 것이니라.”
그리고 굴원은 결연히 죽을 결심을 말하자 어부는 빙그레 웃으며 돛대를 올리고 사라지기 전에 그 유명한 말을 남긴다.
“창랑의 물이 맑을 때라면 이 내 갓끈을 씻을 수 있고/창랑의 물이 더러울 때라면 이 내 발이나 씻어보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어부의 이 말은 세상이 맑을 때에는 갓끈을 씻어 입신양명에 힘쓸 수 있으나 세상이 혼탁할 때는 우선 자신의 발을 씻어 세속을 떠나라는 충고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퇴계가 바위에 ‘탁오대’라고 새겼던 것은 굴원의 어부사를 인용한 것으로 자신도 이제는 갓끈을 씻지 아니하고 자신을 닦고 연마함으로써 오로지 속세를 버리고 학문에 전념하겠다는 결의를 드러내고 있음인 것이다.
실제로 이퇴계는 이곳 단양에서의 결심을 그대로 실천에 옮긴다.
퇴계는 49세 되던 명종 4년에 군수사임장을 감사에게 올린 것을 시작으로 70세 되던 해인 선조 3년 9월에 최후 사장을 올리기까지 21년 동안에 무려 53회의 사퇴원(辭退願)을 내고 자신의 호처럼 ‘물러나 계곡에 머물며 (退溪)’‘자신을 닦고(濯吾)’‘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도를 닦는데(復道別業)’ 정진하였던 것이다.
2005-02-1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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