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이육사
‘청포도’는 우리 겨레의 심금을 울리는 명시 가운데 하나이다.일제치하 민족의 대표적 저항시인으로 일컬어 지는 이육사(李陸史·본명 源祿·1904∼44년)를 빼어난 서정시인으로 평가받게 한 작품이다.시인은 일제하의 암울한 시기에 청포도로 표상되는 고향을 떠올려 평화로운 삶과 조국 광복을 염원하는 마음을 노래했다.
그러나 ‘청포도’가 어떤 배경을 바탕으로 씌어졌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육사는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청소년 시절까지 성장했다.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대구형무소에 3년간 투옥됐으며,이 때의 수인(囚人) 번호(264)를 자신의 아호로 삼았다.이후 중국을 주무대로 독립운동을 하다 감옥에 드나들기 무려 17회,조국광복을 한 해 앞둔 1944년 1월 끝내 중국의 베이징감옥에서 41세로 옥사했다.
육사는 민족지사이자 시인으로서 39년 8개월의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광야’,‘꽃’,‘청포도’ 등 40여편의 작품을 남겼다.이중 ‘청포도’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육사 생존 당시 안동은 물론 전국에 포도밭이 매우 드물었다.게다가 청포도는 찾아보기 힘든 포도밭에서도 구경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러면 육사는 ‘청포도’의 시상을 어디에서 떠올렸을까.이에 대한 해답이 나온 것은 지난 1970년대 초였다.
●‘청포도’를 잉태한 영일만
당시 포항지역 문화단체 후원자이면서 이육사 생존시 친교했던 심당 김대정(80년대 초 작고) 선생이 어느 날 지역의 몇몇 문인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결핵 요양차 포항의 송도원에 머물던 이육사 선생이 찾아와 직접 동해면 도구리의 삼륜포도원으로 안내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또 “육사는 이후 나에게 삼륜포도원에서 청포도의 시상을 얻었다고 말한 적이 있으며,시 초안을 잡은 것을 보여 줬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해병사단이 주둔해 육사가 거닐며 시상을 얻었다는 그 포도밭은 흔적을 찾을 수 없으나 당시엔 이 일대 15만여평이 포도밭일 정도로 유명했다.
김대정 선생이 아꼈던 후배이자 한국문인협회 포항시지부 창립회원으로 그 자리에 동석했던 박이득(63·전 언론인)씨의 증언이다.수필 ‘보리’의 작가로 육사와 교류했던 한흑구(1979년 작고)선생도 1973년 ‘시문학’지에 이육사의 청포도에 관한 문학적 배경이 영일만이라고 설명하는 짧은 수필을 발표했었다.
독립운동으로 일경의 감시하에 거듭된 체포와 옥살이로 병마를 얻은 육사는 1937년 포항 송도에서,1938년 경주 남산 삼불암에서 각각 요양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때 쓰여진 시가 ‘절정’과 ‘청포도’로 39년과 40년 ‘문장’지에 각각 발표됐다.
광복 이후 삼륜포도원을 관리했다는 손호용(87·포항시 동해면 도구1리)옹은 “포도밭을 관리할 무렵 이육사 선생이 이미 수 차례 포도원을 다녀갔다는 것을 주위로부터 전해들었다.”면서 “당시만 해도 포도원 둔덕을 오르면 흰 돛을 단 배들이 영일만을 오가는 모습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고 말했다.영일만과 육사의 만남은 여기서도 더욱 확실히 밝혀진 것이다.
한국문인협회 포항시지부는 이들의 만남을 기리기 위해 1999년 겨울 영일만이 펼쳐 보이는 포항시 대보면 호미곶 해맞이공원 내에 ‘이육사 시비’를 세웠다.가로 3m,세로 1.2m,높이 2.5m 규모의 시비는 영일만을 찾은 고달픈 손님들에게 청포도를 대접하는 듯 서 있다.
이에 앞서 육사가 작고한 지 2년 뒤인 1946년 그의 아우 이원조에 의해 ‘육사 시집’이 엮어져 세상에 나왔다.그 후 여러 곳에서 시 전집의 출판이 이어졌으며,1968년 어린이날 육사의 고향인 안동시 낙동강변에 ‘광야’를 새긴 시비가 제막됐다.안동시는 올해 이육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도산면 원천리 육사의 생가마을 입구 부지 2300여평에 ‘이육사 문학관’을 개관했다.문학관에는 육사의 문학세계와 생애,육필원고,유품,독립운동 내용 등이 전시돼 있다.시는 또 육사를 비롯한 6형제가 살았던 생가인 육우당(六友堂)도 원래대로 복원했다.문학관에서 육사 묘소로 가는 오솔길(3.2㎞)을 ‘육사문학 로드’로 정했고,낙동강변 도로는 ‘육사로’로 명명했다.육사 시문학상 제정 및 시상,육사문학 토론회,독립운동사 학술회의 등 그를 추모하는 행사를 다양하게 열었다.
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2004-10-07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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