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2004] 유남규 기교+김택수 힘=유승민

[아테네 2004] 유남규 기교+김택수 힘=유승민

입력 2004-08-24 00:00
수정 2004-08-24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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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데뷔와 뒤이은 시련,이를 딛고 탁구 영웅으로 다시 서다.’

유승민의 탁구 인생은 동서양의 영웅 신화 구조를 쏙 빼 닮았다.‘탁구 신동’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4년전 시드니올림픽에서 부진을 겪었다.소속팀 이중등록 문제까지 터지며 갈 곳 없는 ‘미아’가 됐다.

그러나 만리장성을 무너뜨리고 ‘신화의 땅’ 아테네에서 ‘탁구 신화’를 다시 썼다.

유승민이 처음 라켓을 잡은 것은 부천 도화초 2년 때.삼촌이 경영하는 탁구장에 우연히 들른 게 계기가 됐다.

천부적인 자질은 오래지 않아 빛을 발했다.부천 오정초등교로 옮긴 5학년 때부터 전국대회 전관왕에 오르며 이름을 떨쳤다.부천 내동중 1학년 때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실업팀 선배를 꺾어 ‘신동’의 명성을 얻었다.

지난 1997년 중학교 3학년생으로 국가대표에 처음 선발된 그는 그해 세계선수권 사상 최연소(15세)로 본선에 올랐다.

2년 뒤에는 아시아주니어선수권대회 단·복식을 석권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무서운 아이’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유남규의 기교와 김택수의 파워를 갖춘 그에게 ‘타도 중국’의 기대가 쏟아진 것은 당연한 일.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시드니올림픽.단식 예선 탈락은 물론 팀 선배 이철승(32)과 함께 뛴 복식에서도 4위에 그쳤다.경험 부족으로 실수를 쏟아냈기 때문.

소속팀 문제도 발목을 잡았다.신생팀 제주 삼다수와 삼성생명의 스카우트 분쟁에 휩쓸리면서 이중등록 선수가 돼 대한탁구협회에 공식적으로 등록이 되지 않았다.

그해 고교(동남종고)를 졸업했지만 갈 곳이 없었다.국내 대회에는 참가할 수도 없어 혼자 독일과 중국 프로리그를 떠돌아 다녀야만 했다.

그러나 강철은 때릴수록 더욱 단단해 지는 법.세계 무대에서 ‘잡초 수련’을 한 그는 예전의 ‘집중력이 부족한 미완의 대기’가 아니었다.특기인 포핸드 드라이브는 힘이 붙었고,단점이던 백핸드와 경기운영 능력도 보완했다.

2001년 말 삼성생명에 새 둥지를 꾸린 그는 그해 11월 스웨덴오픈에서 단식 준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12월 종합선수권대회에서 간판스타 김택수를 누르고 한국 탁구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한 번 물오른 천재의 스매싱은 멈출 줄 몰랐다.

2002아시안게임에서 이철승과 함께 복식 정상에 오른 데 이어 지난해에는 국제탁구연맹(ITTF) 그랜드파이널 단식 3위에 올랐고,지난 5월 이집트오픈과 7월 US오픈 단·복식을 휩쓸며 세계 랭킹도 2년 만에 20위권에서 3위까지 치솟았다.

올림픽을 앞두고는 ‘공화병’(恐華病)을 넘어서기 위해 하루 몸쪽 공을 300개 이상 받아내는 김택수 코치의 특훈과 심리 트레이닝을 받았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2004-08-2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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