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2004] 이성진은 누구

[아테네 2004] 이성진은 누구

입력 2004-08-19 00:00
수정 2004-08-19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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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 10대 소녀에서 신궁으로’

한국 여자 양궁의 역사는 늘 그렇게 흘러왔다.언제나 명궁 자리를 탄탄하게 지키던 맏언니가 흔들리면 막내 동생이 뒤를 메우곤 했다.

박성현(오른쪽)이 18일 밤 아테네 파나티나…
박성현(오른쪽)이 18일 밤 아테네 파나티나… 박성현(오른쪽)이 18일 밤 아테네 파나티나이코 양궁장에서 열린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이성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과녁을 정조준하고 있다.
아테네 올림픽 사진 공공 취재단


“올림픽에 나가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고 쑥스럽게 웃던 막내 이성진은 금메달을 언니 박성현에게 내줬지만 서향순(1984년 LA)-김수녕(1988년 서울)-윤미진(2000년 시드니)으로 이어진 ‘깜짝 역사’를 이을 대들보로 공인 받았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우르르 몰려가 노래하기를 좋아하고,윤미진 박성현 장용호 박경모 등 태릉선수촌에서도 과묵한 것으로 유명한 선배들 사이에서 “언니,오빠!”를 외치며 따라다니고 특유의 미소와 재잘거림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 소녀.어찌 보면 164㎝에 64㎏의 듬직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활을 들고 사선에 서면 놀라운 승부욕을 발휘하곤 했다.또 가끔 늦게 걸리는 것이 흠이지만 일단 발동이 걸리기만 하면 10점 행진을 멈추지 않는 집중력도 장점.

때문에 서오석 대표팀 감독은 ‘쌍두마차’ 윤미진과 박성현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다가도 “활쏘는 타이밍도 빠르고 배짱도 두둑해 언니들 못지 않다.”며 이성진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녀의 승부욕과 집중력이 더욱 빛났던 것은 금메달 따기 보다 어렵다고 하는 국내 올림픽대표 최종 평가전에서였다.앞서 2차 평가전까지만 해도 ‘주부궁사’ 정창숙에 밀려 4위에 그쳤지만 당시 18발 평균 170점 이상을 기록하는 고도의 집중력을 선보이며 극적인 역전극으로 마지막 남은 아테네 티켓 한장을 움켜 쥐었다.

이범웅(41) 김순옥(40)씨 사이 1남 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이성진은 원래 육상 선수였다.그러나 “체력이 좋다.”는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92년 충남 홍성 홍주초교 4학년 때 활로 방향을 틀었다.홍성여중을 거쳐 국가대표 김조순과 윤혜영을 배출한 양궁 명문 홍성여고에 들어갔지만 중고연맹전에서 개인전 2위를 차지한 게 최고 성적.화랑기에서 356점으로 30m 주니어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눈길을 끌기도 했지만 무명 가운데 무명이었다.

원석에서 샛별로 다듬어진 것은 지난해 실업팀에 입단하면서부터.현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맡고 있는 서 감독을 만나 자신에게 알맞는 활을 찾으면서 기량이 비약적으로 발전,그해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아선수권에 나가 개인전 3위를 차지했다.

“언니들에게 방해만 되지 않기를 바랬는데…”라며 혀를 쏙 내미는 이성진의 눈은 어느새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바라보고 있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2004-08-1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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