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은이의 ‘감수광’

혜은이의 ‘감수광’

입력 2004-07-22 00:00
수정 2004-07-22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바람부는 제주에는 돌도 많지만/인정 많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도 많지요/(후렴)감수광 감수광 난 어떡할랭 감수광/설른사람 보냄시엔 가거들랑 혼조 업서예”

제주출신 가수 혜은이가 불러 히트한 ‘감수광’은 제주말로 ‘가십니까’라는 인사말이다.금방 만나 헤어질 때도 ‘감수광’이고 다른 방향으로 가는 오랜만에 만난 이에게도 인사는 ‘감수광’이다.

이미지 확대
유독 제주를 배경으로 한 이별 노래가 많은…
유독 제주를 배경으로 한 이별 노래가 많은… 유독 제주를 배경으로 한 이별 노래가 많은 것은 제주의 푸른 바다가 한없는 슬픔을 아름답게 승화시킬만큼 아름답기 때문일까.사진은 서귀포 테마파크에서 열기구를 타고 바라본 곰섬.
그러나 이 노래 후렴 부분의 ‘감수광’은 떠나는 님을 보내기 싫은 ‘처절한 이별’을 담고 있다.

직역하면 “가십니까,가십니까,난 어떻게 하라고 가십니까? 설운사람 보내오니 가시거든 빨리 돌아오세요”다.

제주의 이별 노래는 조선 선조때 동서 당파싸움을 개탄하며 제주에 왔던 당대의 명문장가 임제(林悌·1549∼1587)가 지은 제주여인의 이별을 담은 노래 ‘송랑곡(送郞曲)’이 효시로 알려져 있다.

임제는 서도병마사로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黃眞伊)의 무덤에 제를 올리고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라는 시조를 지어 바쳤다는 이유로 부임전 파직당한 한량이자 로맨티스트였다.이후 세월을 건너 뛰며 가곡 ‘떠나가는 배’와 송민도의 ‘서귀포 사랑’ 등 제주에서의 이별을 소재로 많은 노래들이 만들어졌으나 ‘감수광’이야말로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애창되는 우리 가요다.

1975년 길옥윤 작사·작곡의 ‘당신은 모르실거야’로 데뷔한 혜은이는 ‘당신만을 사랑해’로 제1회 서울가요제 그랑프리에 오르면서 주가가 상승,10대가수 가요제 최고인기가수,제13회 방송가요대상 여자가수상,제1회 서울국제가요제 대상 등 상이란 상을 모두 휩쓸게 된다.

이에 고무된 길옥윤은 제주출신의 애제자에게 제주노래를 만들어주기 위해 제주에 여러차례 다녀가게 되고 그래서 나온 것이 78년의 히트곡 ‘감수광’이다.

70년대 말이면 고 박정희 대통령이 특정지역제주도개발계획을 추진할 정도로 개발사업과 부동산투기,관광바람이 한창일 때다.외지인들의 제주에 대한 호기심도 과거 어느때와 달리 무척 높았다.이럴 때에 제주의 삼다(三多)인 바람과 돌,아가씨를 담은 이별노래 ‘감수광’이 나왔으니 히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노래와 달리 후렴 부분만을 사투리로 처리한 것이나,그것도 세련되고 깜찍한 얼굴의 혜은이가 부른 것이 더욱 관심과 인기를 끈 요인이 됐다.

노래에 관한 에피소드도 많다.

길옥윤선생은 가사중에 사투리를 담기는 해야겠는데 도저히 익히기 어려워 먼저 표준말로 노래말을 쓴 다음 관광안내원이나 호텔 종사자들에게 물어 사투리로 옮겨 적었다.적긴 적었지만 바르게 해석한 것인지 아닌지 몰라 애를 먹었음은 물론이다.그래서 이 노래 원본에 제주 사투리를 잘못 표기한 부분이 많다.

여러 사람들 특히 제주사람들의 지적에 혜은이가 후렴 중의 ‘어떡할랭’은 ‘어떵허렌’으로,‘설른사람’은 ‘설룬사람’으로,‘보냄시엔’은 ‘보냄시메’로,혼조 업서예”는 ‘혼저 옵서예’로 직접 고쳐 불렀다.

이 고쳐부르기에는 사투리를 완벽히 구사하는 제주출신 탤런트 고두심이 일조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노래가 유행할 초기에는 가사중의 ‘혼저 옵서예’를 혼자서 오라는 말로 알고 제주를 떠날 때 그렇게 인사할라 치면 “아내나 애인을 떼버리고 오라는 말이냐.”고 역정내는 관광객들도 많았다.‘혼저 옵서예’는 빨리 오라는 말이다.

‘감수광’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즐겨 부르는 남한 노래중 하나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 2002년 4월 임동원 청와대 외교·안보·통일특보는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제주평화포럼에 참석,“김정일 위원장이 제주도민들이 북한으로 감귤을 보내준데 대해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우리 노래 가운데 특히 ‘감수광’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라고 전한 바 있다.그래서인지 지난해 10월 제주에서 열린 민족통일평화체육축전때 북측 민속예술공연단은 우리측에 ‘감수광’악보와 테이프를 보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었다.

이 노래는 발라드곡이지만 응원가나 관악연주곡으로도 곧잘 애용된다.지난 5월 열린 백호기축구대회 때나 지난 8일 개막된 백록기전국고교축구대회 때도 ‘감수광’은 응원음악으로 어김없이 등장했다.

제주 한라윈드앙상블 지휘자인 김승택씨는 “‘감수광’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곡”이라며 “지난달 25일 제주시 화북공단내 야외무대에서 이 곡을 연주해 1000여명의 공단 근로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지금도 저녁나절 제주시 신사수동 해안도로의 라이브 재즈카페에 가면 베이스기타와 트럼펫,테너·알토색소폰·드럼·봉가 등으로 엮어내는 ‘감수광’의 열기를 접할 수 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2004-07-22 1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유튜브 구독료 얼마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요?
구글이 유튜브 동영상만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트'요금제를 이르면 연내 한국에 출시한다. 기존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품은 1만 4900원이었지만 동영상 단독 라이트 상품은 8500원(안드로이드 기준)과 1만 900원(iOS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유튜브 구독료는 어느 정도인가요?
1. 5000원 이하
2. 5000원 - 1만원
3. 1만원 - 2만원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