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제비는는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굴 밖을 내다보았지.그러나 조금 어둡기는 해도,아직 비까지 뿌릴 것 같지는 않았어.
‘빨리 서둘러야 겠군.’
족제비는 사냥을 하기 위해 재빨리 굴을 나섰어.족제비는 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왜냐하면,비가 오면 땅이 질척해지고,땅이 질척해지면 아무래도 털에 뭐가 묻고 쉽게 지저분해지지 않겠어?
깔끔한 족제비는 몸을 더럽히는 걸 제일 싫어했어.
그건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신의 털을 욕보이는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었어.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고,짙은 밤색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아름다운 털.족제비는 털을 더럽히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
족제비에게 있어 털은,깨끗하고 아름다운 털은 곧 자신의 전부였던 거야.
“거기 서라!”
굴을 나서자마자,족제비는 통통한 들쥐를 발견하곤 뒤를 쫓기 시작했어.들쥐는 열심히 도망쳤고 족제비도 열심히 뒤쫓았지.그런데 들쥐 때문에 족제비가 놓친 게 있었어.늑대! 그래,위험하기 짝이 없는 늑대 말이야! 들쥐가 약을 올리듯 요리조리 도망쳤기 때문에 족제비는 배고픈 늑대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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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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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비
늑대는 어느 틈에 족제비 바로 앞에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앞발을 휘둘러댔지.
“으악!”
늑대가 나타나자마자,이미 들쥐를 는 일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어.족제비는 도망치기 시작했지.죽기 살기로 도망쳤어.쫓고 쫓기고.목숨을 건 추격전은 한참을 끌었지.
그런데….
마침내 족제비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단다.저쪽에서는 늑대가,그 반대쪽에는 수달의 똥구덩이가 있었거든.족제비 못지않은 깔끔쟁이 수달은,절대 굴 근처에서 똥오줌을 누지 않는단다.말하자면 화장실을 따로 두는 거야.그런데 하필이면 족제비가 그 화장실 쪽으로 몰린 거야.
까짓 똥구덩이가 무슨 문제냐고? 아냐. 다른 동물들은 몰라도 족제비에게는 큰 문제지.
큰 문제이고 말고.아까도 말했잖아.족제비는 자신의 털에 오물 묻히는 걸 죽기보다 싫어한다고.그냥 싫어하는 게 아니야 정말 글자 그대로 죽기보다 싫어한다니까!
이제 족제비에게는 두 가지 길뿐이었어.수달의 화장실을 가로질러 온몸에 똥오줌을 묻히면서 살아남느냐,아니면….
마지막이었어.족제비가 달아나기를 멈추고 그 자리에서 주춤거리는 눈치를 보이자,늑대는 여유있게 웃으며 천천히 족제비에게 다가섰지.
어깨 너머로 늑대의 가쁜 숨결과 끈적이는 웃음,그리고 입맛 다시는 소리를 들으면서 족제비는 정신이 아뜩해지는 것을 느꼈지.
‘도망을 쳐야지? 딱 한 번뿐인데.그러고나서 깨끗이 씻어버리면….’
족제비는 똥오줌이 썩어가고 있는 냄새나는 구덩이를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생각했지.그러나….
다음 순간,족제비는 눈을 질끈 감고 돌아섰어.
늑대를 향해.
그리고는 어금니를 물며 목울대를 올라오는 소리를 꿀꺽 삼켰지.
‘털을 더럽히면서까지 살아남지 않겠어.그게 단 한번이 아니라 반의 반 번뿐일지라도.’
●작가의 말
똥오줌이 있는 구덩이 쪽으로 족제비를 몰면,족제비는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고 합니다.그것이 전통적인 족제비 사냥법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내게 ‘족제비의 털’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나는 무엇을 버렸는가? 그런 멋진 선택을 할 수 있는 족제비가 부럽습니다.˝
2004-06-03 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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