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해 봄,서울에 있는 대학에 유학온 부산 남자와 제주 여자는 과 신입생 환영회에서 눈이 맞았다.이후 서로의 탐색전은 길고 길었고,그 기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사귐’에 들어섰다.벌써 ‘사랑의 세월’은 10년을 넘겼다.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캠퍼스 커플,그것도 과 커플이 연애를 한다는 것은 풍문과 사달을 몰고 다니는 일.MT에서 함께 사라졌다가 선배들의 눈총을 한몸(아니 두몸)에 받고,학생회의 중요한 일을 팽개치고 몰래 종로에 영화보러 나갔다가 근엄한 선배에게 발각돼 난감한 적도 있었다.그래도 ‘몰래 하는’ 사랑은 달콤한 것이랬나.우리는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최근 결혼에 골인했다.
연애시절,유학생의 빠듯한 주머니에도 이것저것 같이 할 만한 일을 찾아 다녔고,귀찮음을 무릅쓰고 보통의 커플들이 하는 일들도 대충 섭렵을 했다.
결혼을 앞두고서는 여행지를 두고 고민도 했었다.기억에 남는 신혼여행을 해야 했지만 결혼전 외국여행을 같이 다녀온 경험도 있어 ‘난감한’ 것은 당연한 게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신혼 여행지를 남도 답사로 결정했다.시댁의 차를 빌려서 3남 지방을 두루 다녀보기로 한 것이다.결혼식과 양가의 인사 등 공식적인 절차를 일찌감치 마친 우리는 경북으로 향했다.그곳을 시작으로 한반도 남쪽을 시계방향으로 훑어 내려가기 시작해 전남 담양에 이르면서 짧고도 긴 신혼여행을 마쳤다.
국문학을 전공한 우리에겐 옛 선인들의 온기를 하나하나 찾아보는 것이 새로운 일이었다.청송의 우람한 산세와 하동의 싱그러움,경주의 유구함과 남원의 멋이 그것이었다.글에서만 풍류를 배웠던 우리에겐 면앙정과 소쇄원의 실경은 풍류의 실체를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신혼 여행지에서 다짐했다.옛 것처럼 익숙해서 편안해진 것들을 정성을 다해 소중히 간직하면서 살아가자고….˝
2004-05-21 3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