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己卯士禍
조광조가 쓴 답안의 서두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가 전하께서 내신 문제 가운데서 ‘공자께서 내가 등용이 된다면 단 몇 개월이라도 가하지만 적어도 3년이면 정치를 통하여 목적을 이룰 수 있다.’하는 데서부터 ‘쉽게 논할 수는 없다.’는 곳까지를 삼가 엎드려 읽어보았습니다.
무릇 한 사람에서 천만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수가 많지 않다고 할 수 없으며,한 가지 일에서 천만가지 일에 이르기까지 그 일이 실로 복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러나 ‘마음(心)’이라는 것과 ‘도(道)’라는 것은 그 가운데서도 하나가 아닌 것이 없는 법입니다.그러므로 천만의 사람과 천만의 일들이 비록 서로 다르고 복잡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관통하는)도와 마음이 하나인 것은 하늘의 근본 이치란 원래 하나이기 때문인 것입니다.천하를 함께한다는 가르침으로써 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이끌고 천하를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나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마음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감화시키면 천하의 마음도 내 마음의 올바름에 감화되어 감히 바르게 되지 않을 수 없으며,이를 나의 도리로 인도하면 천하의 사람들이 이 가르침의 크고 넓음에 감화되어 선한 데로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그러므로 나의 도리와 마음이 성실한가,못 한가에 따라 나라가 잘 다스려질지 아닐지가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자의 도는 천지의 도이며,공자의 마음은 천지의 마음입니다.그러므로 천지의 도와 만물의 마음은 모두 공자의 도를 따라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으며,천지의 마음과 음양(陰陽)의 감응(感應)도 역시 이 공자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조화되지 않음이 없는 것입니다.”
공자의 사상이야말로 ‘천지의 도’임을 역설함으로써 답안을 시작한 조광조의 긴 문장을 모두 전재할 수는 없으나 조광조의 정치관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만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법도를 정하고 기강을 세우려면 대신을 공경하고 그에게 정치를 위임해야만 합니다.그래서 반드시 대신을 임명하고 그에게 정치실무를 위임해야만 정치의 근본이 서는 것입니다.비유하자면 임금은 하늘과 같고 신하들은 사계절과 같습니다.
하늘이 스스로 행한다 하나 사계절의 운영이 없다면 만물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임금이 스스로 정치를 다 떠맡는다 하더라도 대신들의 보좌가 없다면 어떠한 교화도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아니 교화가 이루어지지 못할 뿐이 아닙니다.하늘이 스스로 행하고 임금이 스스로 정치를 다 맡는 것은 하늘이 되고 임금이 되는 도리에 크게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대신을 그 자리에 임명하셨으면서도 그들에게 단지 문구나 따지는 사소한 일만 맡기고 소인배들의 말만 믿고 대신들을 믿지 않으신다면 위로는 임금이 신하를 부리는 도리를 구할 수 없으며,아래로는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그러면 군신의 도리는 사라질 것입니다.그러므로 옛날에 성군들과 현명한 재상들은 반드시 정성스러운 뜻을 다하여 서로를 믿고 또 서로가 해야 할 바를 다했기 때문에 군신이 함께 노력하여 광명정대한 큰 공업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엎드려 비옵건대 전하께오서도 진실로 대신들을 공경하시고 그들에게 정치 실무를 위임하시어 기강과 법도를 세우시고 정하시어 훗날 나라를 다스리는 커다란 근본이 되어 큰 법도가 행하여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조광조는 자신의 정치사상인 치지주의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그것은 군왕 스스로 정치적 모럴에 충실한 도덕성 재확립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유림으로서의 주장이었다.
“제대로 배운 것이 없어 거칠고 무식한 제가 어찌 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까.공자께서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도를 밝히는 것(明道)’에 지나지 않으며 ‘학문하는 것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라도 늘 삼가는 것(謹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그러므로 마지막으로 이 ‘명도’와 ‘근독’ 두 가지를 가지고 전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조광조는 마침내 군왕이 갖춰야 할 군자로서의 두 가지 덕목인 ‘명도’와 ‘근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연하기 시작한다.
2004-03-12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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