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己卯士禍
수문장은 즉시 신무문 뒤쪽에 있는 오운각(五雲閣)으로 달려가 구수복을 만나 예조판서가 한밤중에 왕명을 받고 입시하려 한다는 사실을 고하였다.구수복으로서는 정말 뜻밖의 소식이었다.
원래 신무문은 북방의 현무(玄武)에서 따온 이름으로,이름이 가리키고 있듯이 음기가 강해서 평소에는 굳게 닫아두었던 폐쇄문이었다.궁궐 내에서 쓰는 생활용품을 공급하는 비상문이었지만 왕이 비밀스럽게 행차할 때 쓰는 통로이기도 했다.가령 왕이 소요하고 싶거나 병사들의 열무(閱武)며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모습을 살피는 관농(觀農)때 간혹 왕이 드나드는 문이기도 했다.
문무백관들이 드나드는 정식 통용문은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迎秋門)이었는데,한밤중에 신무문을 통해 입시하려 한다는 수문장의 말은 믿을 수가 없는 보고였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문을 열어 주어서는 안 된다.”
구수복은 엄중하게 명을 내렸다.명을 받은 수문장은 다시 누각 위로 올라가 소리쳐 말하였다.
“문을 열어드릴 수 없습니다.백관께오서는 반드시 영추문으로 드나드는 사실을 모르시나이까.”
수문장의 말에 심정이 나서서 호통을 쳤다.
“네 이놈.주상으로부터 어명을 받고 입시하려 한다고 이르지 않았느냐.” “하오나”
수문장이 대답하였다.
“지금은 밤이 깊었나이다.곧 이고가 될 시각이나이다.”
수문장의 말은 사실이었다.벌써 밤이 깊어 9시와 11시 사이인 이고(二鼓)에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네 이놈”
성미 급한 심정이 소리쳐 말하였다.
“나는 형조판서 심정이다.네놈은 화천군(花川君)도 모른단 말이냐.”
물론 심정은 현재 형조판서는 아니었다.조광조 일파의 탄핵으로 파직되었으나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세운 공으로 화천군에 봉해진 정국공신이었던 것이다.문을 지키는 일개 수문장이었지만 화천군의 이름은 익히 들어왔던 터이므로 심히 난처하여 다시 구수복을 찾아가 고하였다.
“심상치 않은 일이나이다.화천군 심대감도 함께였나이다.”
구수복은 황당하였다.원래 사약방은 액정서(掖庭署)소속의 잡직 관서였다.특히 구수복은 궁중의 높은 곳에서 한밤중의 안전을 책임지는 내시부소속의 하급관리였던 것이다.구수복은 더 이상 거절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나아가 사실을 확인해야 할 것같은 필요성을 느꼈다.구수복은 직접 문 위에 올라가 상황을 살펴보았다.
“무슨 일로 야심한 밤에 이처럼 입시하려 하시나이까.”
“어명이라고 내 이르지 않았느냐.” 심정이 다시 호통을 쳤다.
“이분이 누구신지 모르겠느냐.바로 부원군 홍대감 나으리이시다.”
부원군이라면 왕비의 아버지를 일컫는 말.구수복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모골이 송연하였다.부원군이라면 바로 국구(國舅)가 아닌가.구수복은 이미 신무문을 통해 입궐하여 희빈 홍씨를 만나고 돌아가는 부원군 홍경주의 모습을 익히 알고 있었다.희빈 홍씨라면 대왕마마의 후궁.개국공신의 딸 중에 일곱 명을 후궁으로 삼는다는 법도에 따라 경빈 박씨와 창빈 안씨 다음으로 20살 때 궁궐에 들어 각별히 총애를 받은 후궁이 아닌가.
그 말을 들은 순간 구수복은 더 이상 거절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그는 오운각으로 돌아가 열쇠를 꺼내들고 신무문을 열었다.
이로써 마침내 피비린내나는 궁정쿠데타가 시작된 것이었다.
2004-02-17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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