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부터 내리 당 대변인실을 지켜온 한나라당 김숙자(사진·51·부국장 대우)씨가 2일 32년만에 정당생활을 마감했다.함께 사는 노모의 병수발을 하기 위해서다.
지난 1972년 여고를 졸업한 뒤 공화당 공채로 입당,대변인실과 인연을 맺은 김씨가 그동안 모셔온 대변인만도 29명.이 때문에 김씨는 ‘한국 구(舊) 여당사의 산 증인’,‘대변인실 왕언니’ 등으로 불려왔다.한나라당 대변인실은 이날 김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박수 속에 김씨와 작별했다.
박진 대변인은 “원체 국가의 운명이 달린 일이므로 모든 언론에 공개하는 자리에서 투명하게 기념패 수여식을 거행키로 했다.”고 너스레를 떤 뒤 “32년동안 격변하는 한국정치의 최일선인 대변인실에 재직하며 투철한 사명감과 애당심을 보여준 것에 감사,패를 드린다.”고 말했다.
김씨는 기념패를 받은 후 여러 여성당직자들에 둘러싸여 인사를 받는 도중에 한 여기자가 “제가 태어난 때부터 이곳에서 근무했군요.”라고 인사하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김씨는 “여러분과 같이 만났던 아름다운추억을 가슴에 새기겠다.”고 아쉬워했다.
이지운기자 jj@
지난 1972년 여고를 졸업한 뒤 공화당 공채로 입당,대변인실과 인연을 맺은 김씨가 그동안 모셔온 대변인만도 29명.이 때문에 김씨는 ‘한국 구(舊) 여당사의 산 증인’,‘대변인실 왕언니’ 등으로 불려왔다.한나라당 대변인실은 이날 김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박수 속에 김씨와 작별했다.
박진 대변인은 “원체 국가의 운명이 달린 일이므로 모든 언론에 공개하는 자리에서 투명하게 기념패 수여식을 거행키로 했다.”고 너스레를 떤 뒤 “32년동안 격변하는 한국정치의 최일선인 대변인실에 재직하며 투철한 사명감과 애당심을 보여준 것에 감사,패를 드린다.”고 말했다.
김씨는 기념패를 받은 후 여러 여성당직자들에 둘러싸여 인사를 받는 도중에 한 여기자가 “제가 태어난 때부터 이곳에서 근무했군요.”라고 인사하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김씨는 “여러분과 같이 만났던 아름다운추억을 가슴에 새기겠다.”고 아쉬워했다.
이지운기자 jj@
2004-02-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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