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했다.그 때마다 우리 사회는 깜짝 놀라기도 했고,눈물을 짓거나 심한 논쟁에 휩싸였다.한 해를 마감하면서 사건·사고의 중심에 섰던 인물들을 통해 당시 상황을 되짚어 본다.
“국민들로부터 서서히 잊혀지는 것 같아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올 하반기 이념논쟁을 격렬히 불러일으킨 송두율(宋斗律·59) 교수 사건.남북 화해에 앞장선 ‘양심적 지식인’에서 돌연 ‘거물간첩’으로 신분이 바뀐 송 교수는 국내외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입국한 지 석달 가까이 되는 15일 송 교수의 부인 정정희(鄭貞姬·61)씨는 초기의 대대적인 ‘여론재판’도 안타까웠지만,요즘 서서히 사회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다는 점이 더 큰 고통이라고 털어놨다.
정씨는 지난 10월22일 송 교수가 구속 수감된 이후 매일 오전 10시 둘째아들 린(27)씨와 숙소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 빌라를 나선다.경기 의왕 서울구치소까지 1시간 남짓 지하철을 타고 오갈 때면 정씨는 ‘악몽’을 꾸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남편 천식악화… 발작증세 보여송 교수는 지난 9월22일 37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그러나 입국 다음날부터 수사기관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고,끝내 구속 수감됐다.
정씨는 남편이 구속된 이후 ‘한국 국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특별면회를 하지 못했다고 씁쓸해했다.정씨는 “지난 10일 처음 특별면회를 허락받고 30분 동안 남편을 만났다.”면서 “남편의 손은 항상 따뜻하고 부드러웠는데 50여일만에 처음 잡아봤더니 너무 거칠고 차가워 가슴이 미어졌다.”고 눈시울을 붉혔다.올해 첫눈이 내린 날에도 주홍글씨처럼 ‘65’라는 숫자가 새겨진 죄수복 차림의 남편을 만나자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정씨는 남편이 지병인 천식이 악화돼 지난 11일 밤에는 호흡곤란으로 발작증세까지 보였다고 안타까워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다가올수록 남편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그는 독일에 있을 때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 크리스마스 트리도 마련하지 않고,대신 사회단체에 성금을 기부했다고 돌이켰다.한국 유학생들을 집으로 초청해 이방인의 외로움을 함께 달랬다고 했다.
●두아들 비로소 아버지 삶 이해
하지만 고통만 있는 건 아니다.아버지의 구속으로 정체성 혼란을 겪었던 두 아들이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존경하게 된 것이 큰 위안이라고 했다.
큰아들 준(28)씨는 독일에서 화학박사 과정을 끝내고 곧 미국으로 건너갈 예정이다.준씨는 편지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테니 당당하게 지내달라.”며 아버지를 격려하고 있다.
정씨는 16일 2차 공판이 끝난 직후 보름 동안 독일을 다녀올 계획이다.무비자 체류기간 3개월이 지난 데다 독일 현지에서 송 교수의 탄원을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다.정씨는 “우리 가족에게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 “지금껏 민족의 삶을 끌어안고 양심적으로 살아온 그대로 앞으로도 변치 않고 우리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송 교수가 한국의 실정법을 어긴 범법자로 남을지,이념의 경계인으로 기억될지는 법원의 최종 판결과 이후 평가에서 가려질 전망이다.그러나 올해 송 교수의 입국과 그 여파가 수십년간 엉킨 이념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단초를 제공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구혜영기자 koohy@
“국민들로부터 서서히 잊혀지는 것 같아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올 하반기 이념논쟁을 격렬히 불러일으킨 송두율(宋斗律·59) 교수 사건.남북 화해에 앞장선 ‘양심적 지식인’에서 돌연 ‘거물간첩’으로 신분이 바뀐 송 교수는 국내외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입국한 지 석달 가까이 되는 15일 송 교수의 부인 정정희(鄭貞姬·61)씨는 초기의 대대적인 ‘여론재판’도 안타까웠지만,요즘 서서히 사회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다는 점이 더 큰 고통이라고 털어놨다.
정씨는 지난 10월22일 송 교수가 구속 수감된 이후 매일 오전 10시 둘째아들 린(27)씨와 숙소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 빌라를 나선다.경기 의왕 서울구치소까지 1시간 남짓 지하철을 타고 오갈 때면 정씨는 ‘악몽’을 꾸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남편 천식악화… 발작증세 보여송 교수는 지난 9월22일 37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그러나 입국 다음날부터 수사기관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고,끝내 구속 수감됐다.
정씨는 남편이 구속된 이후 ‘한국 국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특별면회를 하지 못했다고 씁쓸해했다.정씨는 “지난 10일 처음 특별면회를 허락받고 30분 동안 남편을 만났다.”면서 “남편의 손은 항상 따뜻하고 부드러웠는데 50여일만에 처음 잡아봤더니 너무 거칠고 차가워 가슴이 미어졌다.”고 눈시울을 붉혔다.올해 첫눈이 내린 날에도 주홍글씨처럼 ‘65’라는 숫자가 새겨진 죄수복 차림의 남편을 만나자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정씨는 남편이 지병인 천식이 악화돼 지난 11일 밤에는 호흡곤란으로 발작증세까지 보였다고 안타까워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다가올수록 남편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그는 독일에 있을 때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 크리스마스 트리도 마련하지 않고,대신 사회단체에 성금을 기부했다고 돌이켰다.한국 유학생들을 집으로 초청해 이방인의 외로움을 함께 달랬다고 했다.
●두아들 비로소 아버지 삶 이해
하지만 고통만 있는 건 아니다.아버지의 구속으로 정체성 혼란을 겪었던 두 아들이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존경하게 된 것이 큰 위안이라고 했다.
큰아들 준(28)씨는 독일에서 화학박사 과정을 끝내고 곧 미국으로 건너갈 예정이다.준씨는 편지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테니 당당하게 지내달라.”며 아버지를 격려하고 있다.
정씨는 16일 2차 공판이 끝난 직후 보름 동안 독일을 다녀올 계획이다.무비자 체류기간 3개월이 지난 데다 독일 현지에서 송 교수의 탄원을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다.정씨는 “우리 가족에게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 “지금껏 민족의 삶을 끌어안고 양심적으로 살아온 그대로 앞으로도 변치 않고 우리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송 교수가 한국의 실정법을 어긴 범법자로 남을지,이념의 경계인으로 기억될지는 법원의 최종 판결과 이후 평가에서 가려질 전망이다.그러나 올해 송 교수의 입국과 그 여파가 수십년간 엉킨 이념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단초를 제공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구혜영기자 koohy@
2003-12-1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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