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사는 미국여성과 제법 친하게 지낸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아파트 앞집이라는 게 그렇듯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지만,언제나 전화 확인 후 방문한다.만나기 전 약속을 철저히 하는 것은 물론이다.그러다 보니 둘 다 뻔히 집에 있는 상황에서 전화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보고싶다.”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낯 간지럽게도!).문화 차이를 실감할 수밖에 없다.문화 차이가 실제 커뮤니케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아무리 노력해도 커뮤니케이션이 힘들어질 때가 적지 않다.예컨대 정(情),한(恨),체면,신바람 같은 것의 의미는 말로 온전히 설명되지도 않고 이해시킬 수 있는 성질도 아니다.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접근 차원도 달라서 서구 문화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내용 자체를 중시하지만 우리 문화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보다 중시하는 편이다.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거리,즉 ‘권력 거리’가 큰 문화권은 종종 ‘무엇을 말하는가.’(내용) 보다 ‘어떻게 말하는가.’(관계)를 훨씬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말속에 숨은 뜻을 거의내포하지 않는 이른바 ‘저맥락(low context)’ 커뮤니케이션이 서구 개인주의 문화의 특징이라면 우리나라 기성 세대에 익숙한 집단주의 문화는 이면에 다른 무엇,혹은 숨겨진 뜻을 포함하는 ‘고맥락(high context)’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구사하는 특징이 있다.공식 상황과 비공식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또한 빈번하며,이때 보다 중요한 정보가 오가는 곳은 저녁 술자리와 같은 주로 비공식 상황이다.
이즈음 우리 사회를 괴롭히는 갈등을 보자면 단일민족이라는 사실이 무색하리만큼 집단간 격심한 문화 차이를 드러내는 데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그 가운데 특히 심각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듯이 세대간 격차에 대한 부분이다.서구 전통사회가 산업사회로,다시 정보사회로 변모되기까지 2백년 정도 걸린 길을 우리가 50년도 채 안 돼 단숨에 달려온 대가로 겪는 불가피한 현상이다.일찌감치 1950년대부터 정보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한 미국의 경우 현재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정보사회 세대에 속한다면,우리나라에는 조부모식 전통사회 세대,부모식 산업사회 세대,자녀식 정보사회 세대가 각기 따로 존재한다.문화 차이가 극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정보사회를 대표하는 인터넷 미디어의 바람몰이가 우리나라 정치사 흐름을 크게 바꾸어 놓으면서 사회 곳곳에서 정보사회 세대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다.앞으로 그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물줄기가 낮은 곳으로 흐르듯 당연하다.산업사회 세대,전통사회 세대라고 해서 모를 리 없는 이치다.따라서 최근에 표출되고 있는 갈등의 핵심은 이미 형성된 물줄기를 되돌리려는 자와 막는 자 사이의 불화가 아니다.우리 사회가 처한,삼대(三代) 문화가 나란히 공존하는 불가피한 현실을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배려가 부족한 데 대한 불만이자 섭섭함에 관한 문제이다.결국 문화 차이를 둘러싼 커뮤니케이션 문제인 것이다.
흔히 생각하듯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전부가 아니다.진정한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정의는 상대방이 메시지를 ‘이해’하고,나아가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다.이를 위해선 양자간 공통기반(common ground)이 형성되어야 하며 문화적 동질감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문화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가짐이다.크고 작은 문화 차이는 언제 어디서든 존재하기 마련이다.내 문화가 소중한 만큼 상대방의 문화도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그런데 도대체 우리 같은 단일민족 사이에 문화 차이란 게 생겨야 얼마나 생길 수 있기에 갈등 운운할 정도까지 이른 것인지.누구랄 것 없이 태어나면서 정(情)과 신바람을 가슴에 품는 ‘우리들’은 어디로 실종됐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오 미 영 경원대 교수 신문방송학
말속에 숨은 뜻을 거의내포하지 않는 이른바 ‘저맥락(low context)’ 커뮤니케이션이 서구 개인주의 문화의 특징이라면 우리나라 기성 세대에 익숙한 집단주의 문화는 이면에 다른 무엇,혹은 숨겨진 뜻을 포함하는 ‘고맥락(high context)’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구사하는 특징이 있다.공식 상황과 비공식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또한 빈번하며,이때 보다 중요한 정보가 오가는 곳은 저녁 술자리와 같은 주로 비공식 상황이다.
이즈음 우리 사회를 괴롭히는 갈등을 보자면 단일민족이라는 사실이 무색하리만큼 집단간 격심한 문화 차이를 드러내는 데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그 가운데 특히 심각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듯이 세대간 격차에 대한 부분이다.서구 전통사회가 산업사회로,다시 정보사회로 변모되기까지 2백년 정도 걸린 길을 우리가 50년도 채 안 돼 단숨에 달려온 대가로 겪는 불가피한 현상이다.일찌감치 1950년대부터 정보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한 미국의 경우 현재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정보사회 세대에 속한다면,우리나라에는 조부모식 전통사회 세대,부모식 산업사회 세대,자녀식 정보사회 세대가 각기 따로 존재한다.문화 차이가 극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정보사회를 대표하는 인터넷 미디어의 바람몰이가 우리나라 정치사 흐름을 크게 바꾸어 놓으면서 사회 곳곳에서 정보사회 세대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다.앞으로 그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물줄기가 낮은 곳으로 흐르듯 당연하다.산업사회 세대,전통사회 세대라고 해서 모를 리 없는 이치다.따라서 최근에 표출되고 있는 갈등의 핵심은 이미 형성된 물줄기를 되돌리려는 자와 막는 자 사이의 불화가 아니다.우리 사회가 처한,삼대(三代) 문화가 나란히 공존하는 불가피한 현실을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배려가 부족한 데 대한 불만이자 섭섭함에 관한 문제이다.결국 문화 차이를 둘러싼 커뮤니케이션 문제인 것이다.
흔히 생각하듯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전부가 아니다.진정한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정의는 상대방이 메시지를 ‘이해’하고,나아가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다.이를 위해선 양자간 공통기반(common ground)이 형성되어야 하며 문화적 동질감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문화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가짐이다.크고 작은 문화 차이는 언제 어디서든 존재하기 마련이다.내 문화가 소중한 만큼 상대방의 문화도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그런데 도대체 우리 같은 단일민족 사이에 문화 차이란 게 생겨야 얼마나 생길 수 있기에 갈등 운운할 정도까지 이른 것인지.누구랄 것 없이 태어나면서 정(情)과 신바람을 가슴에 품는 ‘우리들’은 어디로 실종됐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오 미 영 경원대 교수 신문방송학
2003-10-0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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