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언제부턴가 경제왕국으로 떠오르더니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산업에서도 국제적인 점유율과 인지도를 확보한 지 오래다.미국 영화에서 보면 일본의 사시미가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취급되고 홈웨어 대신 유카타와 하오리가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한다.그만큼 일본에 대한 선호가 곳곳에 파고 들어 있다는 의미다.그렇다면 우리에게 일본은 경계해야 할 만한 대상인가.
이번 일본대중문화 완전개방을 두고 네티즌들은 “우리는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일제시대를 겪은 사람들은 일본에 대한 유감이 남아 있지만 청소년들은 일본을 특별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우리 주변에 있는 여러나라중의 한 나라로서 일본문화가 아닌,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자는 식이다.
주체적인 문화수용력이 성숙되지 못한 시점에서 일본 대중문화를 무제한적으로 개방하는 것은 역시 시기상조가 아닌가.또는 사회전반에 끼칠 충격과 문화산업적 측면에서도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은 만만치 않다.그러나 일본영화 체험은 저질로 지칭되는 원조교제·폭주족·이지매 등이 우리나라에 침투하여 이미 회오리바람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98년 이후 단계적 개방을 거치는 동안 일본적인 과묵하고 차가운 폭력과 무자비하고 가혹한 폭력 등을 우리 청소년들은 역설적 비디오 게임이나 서바이벌 게임 정도로 받아 들인다는 보고가 있었다.우리나라엔 수많은 일본영화 동아리가 있고 최근에는 ‘메가박스와 함께 하는 일본영화 여행’이 진행중이다.
이처럼 일본대중문화 개방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수없이 되풀이된 논의선상에서도 뾰족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았다.그 시기를 언제로 잡느냐만 남았을 뿐 서서히 개방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다만 가장 주목되는 것은 돈이 되는 것이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입업자들의 역할이다.국민은 모든 것을 다 향수할 권리가 있으므로 마구잡이로 불량품을 들여온다면 그로 인해 야기될 사회적 혼돈양상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거기에 걸맞은 냉엄한 여과장치가 필요할 수밖에없다.따라서 영화등급 역시 청소년 보호와 국민정서 순화 차원에서 적절하고 현명한 잣대를 가져야 한다.그러자면 수입업자가 제시한 관람 신청등급이 제한상영이 되는 예가 속출할 수도 있다.
또 일본문화 베끼기에 급급했던 가요나 방송 등 저작권 문제도 가차없이 도마에 오를 것이다.전면개방 전까지는 눈감고 있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방치하지 않고 시퍼런 칼날을 들이댈 것은 뻔하다.그러나 이 역시 언젠가는 부닥쳐야 할 현실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찾고 무장할 줄 알아야 한다.
일본대중문화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문화상품이 된 것은 저급문화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의 핵심에서 고급문화가 도도하게 군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전후 두 차례나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영화에서도 70여개가 넘는 국제영화제상을 거머쥐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이에 비해 우리는 남의 잘난 꼴을 보지 못한다.고급문화나 저급문화를 한꺼번에 뒤섞어 놓고 모든 것은 똑같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려 든다.
일본은 고급문화를 극진하게 대접하면서 대중문화는 고급문화가 자생시킨 또다른 문화의 형태임을 엄연히 차별시키고 있다.그들은 남의 잘난 것을 인정하고 승복할 줄 아는 힘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인생이란 머무는 일이 없는 변화의 연속이다.우리는 지금 정치구도 전체의 변화뿐 아니라 문화구도의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변화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피폐의 파장이 조장될 수도 있다.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대등한 문화교류의 파트너로 받아 들이는 것이 자연스럽다.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면서 오늘의 개방과 변혁을 발전의 기회로 삼아 나가야 한다.
이세기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前 대한매일 논설위원
이번 일본대중문화 완전개방을 두고 네티즌들은 “우리는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일제시대를 겪은 사람들은 일본에 대한 유감이 남아 있지만 청소년들은 일본을 특별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우리 주변에 있는 여러나라중의 한 나라로서 일본문화가 아닌,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자는 식이다.
주체적인 문화수용력이 성숙되지 못한 시점에서 일본 대중문화를 무제한적으로 개방하는 것은 역시 시기상조가 아닌가.또는 사회전반에 끼칠 충격과 문화산업적 측면에서도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은 만만치 않다.그러나 일본영화 체험은 저질로 지칭되는 원조교제·폭주족·이지매 등이 우리나라에 침투하여 이미 회오리바람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98년 이후 단계적 개방을 거치는 동안 일본적인 과묵하고 차가운 폭력과 무자비하고 가혹한 폭력 등을 우리 청소년들은 역설적 비디오 게임이나 서바이벌 게임 정도로 받아 들인다는 보고가 있었다.우리나라엔 수많은 일본영화 동아리가 있고 최근에는 ‘메가박스와 함께 하는 일본영화 여행’이 진행중이다.
이처럼 일본대중문화 개방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수없이 되풀이된 논의선상에서도 뾰족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았다.그 시기를 언제로 잡느냐만 남았을 뿐 서서히 개방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다만 가장 주목되는 것은 돈이 되는 것이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입업자들의 역할이다.국민은 모든 것을 다 향수할 권리가 있으므로 마구잡이로 불량품을 들여온다면 그로 인해 야기될 사회적 혼돈양상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거기에 걸맞은 냉엄한 여과장치가 필요할 수밖에없다.따라서 영화등급 역시 청소년 보호와 국민정서 순화 차원에서 적절하고 현명한 잣대를 가져야 한다.그러자면 수입업자가 제시한 관람 신청등급이 제한상영이 되는 예가 속출할 수도 있다.
또 일본문화 베끼기에 급급했던 가요나 방송 등 저작권 문제도 가차없이 도마에 오를 것이다.전면개방 전까지는 눈감고 있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방치하지 않고 시퍼런 칼날을 들이댈 것은 뻔하다.그러나 이 역시 언젠가는 부닥쳐야 할 현실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찾고 무장할 줄 알아야 한다.
일본대중문화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문화상품이 된 것은 저급문화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의 핵심에서 고급문화가 도도하게 군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전후 두 차례나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영화에서도 70여개가 넘는 국제영화제상을 거머쥐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이에 비해 우리는 남의 잘난 꼴을 보지 못한다.고급문화나 저급문화를 한꺼번에 뒤섞어 놓고 모든 것은 똑같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려 든다.
일본은 고급문화를 극진하게 대접하면서 대중문화는 고급문화가 자생시킨 또다른 문화의 형태임을 엄연히 차별시키고 있다.그들은 남의 잘난 것을 인정하고 승복할 줄 아는 힘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인생이란 머무는 일이 없는 변화의 연속이다.우리는 지금 정치구도 전체의 변화뿐 아니라 문화구도의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변화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피폐의 파장이 조장될 수도 있다.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대등한 문화교류의 파트너로 받아 들이는 것이 자연스럽다.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면서 오늘의 개방과 변혁을 발전의 기회로 삼아 나가야 한다.
이세기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前 대한매일 논설위원
2003-09-22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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