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의 전쟁/“종전후 對아랍권 관계 신경써야”‘걸프전 경험’ 최봉름 前이라크대사 문답

부시의 전쟁/“종전후 對아랍권 관계 신경써야”‘걸프전 경험’ 최봉름 前이라크대사 문답

입력 2003-03-25 00:00
수정 2003-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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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차 걸프전 때도 한국이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에 참가했지만,한국과 이라크 양국 관계는 그다지 악화되지 않았습니다.주변 중동국가들도 현실적 실익을 고려,우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최봉름(崔奉凜·69) 전 주 이라크 대사는 24일 한국이 이번 이라크전에서 다시 미국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종전 후 아랍권과의 관계회복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88년 3월 바그다드 총영사로 부임해 이듬해 7월 이라크와의 정식 외교관계 수립 이후 대사로 직함을 바꿨다.88년 8월 이란·이라크 전쟁,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91년 1월 걸프전 등을 현장에서 목격한 외교 사령관이었다.

유엔의 대 이라크 최후통첩 시한인 91년 1월15일 이라크를 빠져나온 뒤 우리 정부의 이라크 대사관 잠정 폐쇄 조치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최 전 대사는 종전 뒤에도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을 고려한 정부 방침에 따라 1년여 고국에 머물다 튀니지 대사로 갔다.한국 정부의 주 이라크 초대 대사이자 현재까진 마지막 대사인 셈이다.

“한·미 동맹관계에 있는 우리가 지원하지 않는 것도 어려운 일로,국민들이 이해해줄 것입니다.1차 걸프전은 같은 중동국가들까지 다국적군에 참가해 이라크와 치른 전쟁입니다.격렬한 반전 시위도 없었지요.미국은 지금 ‘외로운’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이 비참한 전쟁이 빨리 끝나고 평화 상태에서 두 번째 대사가 파견됐으면 합니다.”

외교관 가운데 유독 전쟁을 많이 겪은 그는 지금도 TV를 보다 보면 당시 상황이 떠올라 가슴이 조여온다고 회고했다.

88년 이란·이라크전 때는 이란의 미사일이 우리 근로자들의 숙소에 떨어지기도 했다.당시 8000명의 근로자들이 있었는데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었다.그 때 생각만 하면 정말 ‘복’ 많은 대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91년 전쟁이 개시됐는데도 우리 근로자들이 대피하지 않고 버텼을 때라고 한다.“현대건설 근로자 22명이 바그다드에 남았습니다.모든 것을 걸고 중동 건설 현장에 온 분들이었습니다.귀국하게 되면 계약이 파기되는 것을 우려했던 거지요.”

최 전 대사는 이번 전쟁으로 사담후세인의 정권이 무너진다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풀어갔다.“정권이 바뀌어도 채권·채무 관계는 그대로 있는 게 국제관례입니다.우리 기업들이 연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여지가 큽니다.”

그는 걸프전 발발 직전인 91년 1월10일 미 외교관들이 이용하는 전세기를 타고 나오라는 정부 훈령을 받았으나 본국과 협의,타지 않았다.반미 감정으로 가득차 있는 이라크인들에게 나쁜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당시 우리 근로자 100여명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미국 전세기를 탈 수는 없었습니다.” 종전 이후 우리 정부가 이라크에 대사를 파견하지 않았는데도 바그다드의 우리 대사관에는 10여년간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고,KOTRA무역관 및 우리 건설사의 활동도 지속됐다.

“아직도 여명 속에 이라크를 떠날 때의 착잡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라고 밝힌 최 전 대사는 “대사관 고용원으로 있던 한국인 박상화(45)씨가 내 비서였던 이라크 여인과 결혼,바그다드에서 한·이라크간 가교역할을 해오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찾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2003-03-25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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