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오징어 ‘징징이’의 딜레마

[굄돌]오징어 ‘징징이’의 딜레마

김내언 기자 기자
입력 2003-02-03 00:00
수정 2003-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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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닷속,비키니시티에는 개구쟁이 스펀지밥과 맹하고 속 좋기만 한 불가사리 뚱이,그리고 이 두 이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오징어 징징이가 살고 있습니다.’ 일곱살 난 제 아들이 열심히 보고 있는 텔레비전 만화 속 이야기랍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못말리는 스펀지밥과 뚱이의 유치한 장난질에 지칠대로 지친 오징어 징징이가 조용한 오징어들만 모여 산다는 오징어빌라로 이사를 가버립니다.이곳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순간 징징이는 천국에 온 것 같이 기뻐합니다.자기가 그리도 소원하던 것,이를테면 조용한 이웃들,자전거를 타고 시내로 나가고 자신이 좋아하는 통조림이 가득 쌓인 쇼핑몰,그동안 시끄러워서 도저히 연습이 안되던 클라리넷 연주,이 모든 것을 오징어 이웃들과 같이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자신이 그렇게 원하던 생활이 날마다 반복되자,징징이는 그만 따분함을 느낍니다.그래서 징징이는 이 점잖고 조용한 오징어마을에서 ‘문제오징어’가 되고만다는 내용입니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고요?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오징어빌라와 비슷한 신도시입니다.그리고 저는 점잖지는 못하지만 이웃과 어울리기를 꺼리는 따분한 오징어 징징이를 닮았고요.

어느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나의 이웃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혹 내가 문제있는 인간이 되는 건 아닐까? 이 얘기를 오랜 친구에게 했더니,친구는 어느 외국인이 했다는 “내 나라는 따분한 천국,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는 말을 소개하며 “아직도 한국은 살기에 지옥같은 곳인데,넌 한 술 더떠 심오한 지옥을 원하느냐.”고 핀잔까지 주더군요.

눈길,얼음길,고향길이 뇌리에 생생한 설의 뒤끝입니다.재미있고 아름다운 지옥의 시간들 경험하셨겠죠? 그 경험들을 ‘재미있는 지옥’에서의 일들로 간직하세요.불편했지만 재미있었던 그런 시간들 말입니다.

김 내 언

소설가
2003-02-03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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