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전이 꽂힌 서재에서 편안한 의자에 몸을 묻고 영화를 감상하는 사이 “자산관리는 플랜마스터에 맡기시고…”라는 카피가 흐른다.이 광고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홍승기(43)변호사가 연극 ‘아트’로 무대에 정식 데뷔한다.그것도 감초 역할이 아니라,어엿한 3명의 주연배우 가운데 한 배역을 꿰찼다.
서울 청담동의 한 건물 지하 연습실.모두들 집에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유독 한 사람만이 ‘나머지 공부’에 몰두해 있다.오전에는 변호사 사무실로,오후에는 연극연습실로 출근한다는 그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굳이 오후 10시를 넘겨 인터뷰 시간을 잡자고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곧 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제 연극인생 30년을 결산하는 작품입니다.(웃음)” 농담처럼 말문을 연 데는 사연이 있다.대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똘망똘망한’외모 덕분에 학교 추천을 받아 아역배우로 연극무대와 TV드라마에 서곤 했다.
“극단을 따라 다녔으니 연극쟁이들의 삶이 고달프다는 것은 알았죠.그래서 본업은 다른 일을 하더라도 언젠가는 연극으로 돌아가리라 맘을 먹었습니다.” 오랫동안 품어온 꿈이 드디어 실현됐지만 “이제는 연극인생을 마감해야겠다.”며 너스레를 떤다.변호사하랴 연기연습하랴,아무리 부지런한 그라도 힘에 부칠터.“그래도 이번 공연이 끝나면 또 몸이 근질근질해질 것 같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제 대사가 나갈 때 객석이 움직이면 전율을 느껴요.낚시에서 붕어가 걸렸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죠.” 그 느낌 때문에 변호사가 되어서도 계속 배우를 넘봤고,10여년전 아내 몰래 배우 공모에 원서를 들이밀면서 그의 ‘외도’는 시작됐다.데뷔작은 93년 영화 ‘아주 특별한 변신’.처음에는 귀걸이에 가발까지 쓴 불량한 강간범을 맡으려 했지만 “근엄한 선배들의 꾸지람이 무서워서” 변호사역으로 만족했다.그 뒤 영화 ‘축제’에서 안성기의 친구 4명 가운데 한명으로 등장했고,재판을 다룬 TV 드라마에서 변호사 역으로도 종종 출연했다.
이번에 그가 맡은 역은 역시 변호사.하지만 극중에서 재판을 하는 장면은 없다.연극은 종학이 하얀색 캔버스에 하얀 선이 그어져있는 미술작품을 비싸게 구입하면서 시작된다.종학은 자랑하기 위해 친구 둘을 초대하지만,승기는 자신의 친구가 그렇게 큰 돈을 단지 캔버스를 사는 데 써버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현실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인물입니다.호사취미를 가진 친구에게 시비를 걸죠.” 승기 역은 이지나 연출가를 대변하는 역할이라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이씨는 ‘버자이너 모놀로그’‘록키 호러 쇼’‘메이드 인 차이나’를 올린 여성연출가.“승기의 대사를 빌려 예술은 관객과 같이 호흡해야 한다는 속내를 털어놓습니다.대중적이라는 비판에 대한 반론인 셈이죠.”
연극 ‘아트’는 프랑스 여류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작품으로,96년 영국에서 제작해 올리비에 어워드 등 최고의 상을 휩쓸었다.그 뒤 35개 언어로 번역·제작됐으며,런던에서는 24번째 캐스팅으로 장기 공연중이다.이번 무대는 한국식으로 번안했고,출연진의 직업도 바꿨다.영화 ‘강원도의 힘’의 백종학,극단 목화 출신의 박희순이 실명 그대로 출연한다.
“성공한 중년남성의 이미지를 파는 연극이라,타깃이 중산층 여성이에요.(웃음) 아니 그보단 휴머니즘·사랑·성공·예술에 관한 위트있는 대사가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변호사가 변호사역을 맡는 것은 “진정한 배우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다음엔 깡패 두목 같은 거친 역을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변호사로서 너무 게으른 것은 아닐까.“전 언제나 문화와 법률을 접목하는 일을 좋아해요.”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국내와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그는 저작권 분쟁 등을 다루는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현재 광고 심의위원,독립제작사협회 고문도 맡고 있다.“문화산업이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지금까지도 그래왔고요.물론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계속 연기를 할 겁니다.” 연극 ‘아트’는 새달 1∼2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02)516-1501.
김소연기자 purple@
서울 청담동의 한 건물 지하 연습실.모두들 집에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유독 한 사람만이 ‘나머지 공부’에 몰두해 있다.오전에는 변호사 사무실로,오후에는 연극연습실로 출근한다는 그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굳이 오후 10시를 넘겨 인터뷰 시간을 잡자고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곧 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제 연극인생 30년을 결산하는 작품입니다.(웃음)” 농담처럼 말문을 연 데는 사연이 있다.대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똘망똘망한’외모 덕분에 학교 추천을 받아 아역배우로 연극무대와 TV드라마에 서곤 했다.
“극단을 따라 다녔으니 연극쟁이들의 삶이 고달프다는 것은 알았죠.그래서 본업은 다른 일을 하더라도 언젠가는 연극으로 돌아가리라 맘을 먹었습니다.” 오랫동안 품어온 꿈이 드디어 실현됐지만 “이제는 연극인생을 마감해야겠다.”며 너스레를 떤다.변호사하랴 연기연습하랴,아무리 부지런한 그라도 힘에 부칠터.“그래도 이번 공연이 끝나면 또 몸이 근질근질해질 것 같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제 대사가 나갈 때 객석이 움직이면 전율을 느껴요.낚시에서 붕어가 걸렸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죠.” 그 느낌 때문에 변호사가 되어서도 계속 배우를 넘봤고,10여년전 아내 몰래 배우 공모에 원서를 들이밀면서 그의 ‘외도’는 시작됐다.데뷔작은 93년 영화 ‘아주 특별한 변신’.처음에는 귀걸이에 가발까지 쓴 불량한 강간범을 맡으려 했지만 “근엄한 선배들의 꾸지람이 무서워서” 변호사역으로 만족했다.그 뒤 영화 ‘축제’에서 안성기의 친구 4명 가운데 한명으로 등장했고,재판을 다룬 TV 드라마에서 변호사 역으로도 종종 출연했다.
이번에 그가 맡은 역은 역시 변호사.하지만 극중에서 재판을 하는 장면은 없다.연극은 종학이 하얀색 캔버스에 하얀 선이 그어져있는 미술작품을 비싸게 구입하면서 시작된다.종학은 자랑하기 위해 친구 둘을 초대하지만,승기는 자신의 친구가 그렇게 큰 돈을 단지 캔버스를 사는 데 써버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현실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인물입니다.호사취미를 가진 친구에게 시비를 걸죠.” 승기 역은 이지나 연출가를 대변하는 역할이라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이씨는 ‘버자이너 모놀로그’‘록키 호러 쇼’‘메이드 인 차이나’를 올린 여성연출가.“승기의 대사를 빌려 예술은 관객과 같이 호흡해야 한다는 속내를 털어놓습니다.대중적이라는 비판에 대한 반론인 셈이죠.”
연극 ‘아트’는 프랑스 여류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작품으로,96년 영국에서 제작해 올리비에 어워드 등 최고의 상을 휩쓸었다.그 뒤 35개 언어로 번역·제작됐으며,런던에서는 24번째 캐스팅으로 장기 공연중이다.이번 무대는 한국식으로 번안했고,출연진의 직업도 바꿨다.영화 ‘강원도의 힘’의 백종학,극단 목화 출신의 박희순이 실명 그대로 출연한다.
“성공한 중년남성의 이미지를 파는 연극이라,타깃이 중산층 여성이에요.(웃음) 아니 그보단 휴머니즘·사랑·성공·예술에 관한 위트있는 대사가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변호사가 변호사역을 맡는 것은 “진정한 배우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다음엔 깡패 두목 같은 거친 역을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변호사로서 너무 게으른 것은 아닐까.“전 언제나 문화와 법률을 접목하는 일을 좋아해요.”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국내와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그는 저작권 분쟁 등을 다루는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현재 광고 심의위원,독립제작사협회 고문도 맡고 있다.“문화산업이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지금까지도 그래왔고요.물론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계속 연기를 할 겁니다.” 연극 ‘아트’는 새달 1∼2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02)516-1501.
김소연기자 purple@
2003-01-2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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