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재학중 결혼 허용'기사(대한매일 1월23일자 1면)를 읽고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이화여대가 금혼(禁婚) 학칙을 폐지하기로 했다니 매우 환영할 일이다.
지난 1946년 처음 금혼제를 도입했을 당시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그때 여성은 사회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사회생활의 기본이 되는 교육여건도 남성에 비해 열악한 상황이었다.대학에 입학했다가도 결혼을 하면 곧바로 학업을 그만두는 일이 자연스러운 시기였다.따라서 여성 고급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당시에는 오히려 파격적인 금혼제를 도입했을 것으로 본다.그 결과 많은 여성이 사회 전반으로 진출할 수 있었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금혼제를 도입했을 때의 의미가 퇴색됐다.
사회 분위기도 많이 변했고 개인의 생활을 규칙이나 제도로 얽어 맬 수 있느냐의 문제도 불거졌다. 그동안 학내에서는 금혼제 존폐 여부를 놓고 구성원끼리 고민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폐지하자는 의견도 많았지만,한국 사회에서는 결혼 후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어 이런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다.처음 취지와 달리 여성의 삶을 제한하는 규칙은 진작 폐지됐어야 옳았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이화여대가 금혼(禁婚) 학칙을 폐지하기로 했다니 매우 환영할 일이다.
지난 1946년 처음 금혼제를 도입했을 당시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그때 여성은 사회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사회생활의 기본이 되는 교육여건도 남성에 비해 열악한 상황이었다.대학에 입학했다가도 결혼을 하면 곧바로 학업을 그만두는 일이 자연스러운 시기였다.따라서 여성 고급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당시에는 오히려 파격적인 금혼제를 도입했을 것으로 본다.그 결과 많은 여성이 사회 전반으로 진출할 수 있었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금혼제를 도입했을 때의 의미가 퇴색됐다.
사회 분위기도 많이 변했고 개인의 생활을 규칙이나 제도로 얽어 맬 수 있느냐의 문제도 불거졌다. 그동안 학내에서는 금혼제 존폐 여부를 놓고 구성원끼리 고민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폐지하자는 의견도 많았지만,한국 사회에서는 결혼 후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어 이런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다.처음 취지와 달리 여성의 삶을 제한하는 규칙은 진작 폐지됐어야 옳았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2003-01-2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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