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직장의 ‘청일점’ 마냥 좋지만은 않답니다

여성직장의 ‘청일점’ 마냥 좋지만은 않답니다

이송하 기자 기자
입력 2002-12-26 00:00
수정 2002-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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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 강요,성희롱,여자를 동료가 아닌 꽃으로 취급하는 분위기,비합리적인상명하복의 명령체계 등 우리가 접하는 조직문화는 일그러진 남성문화의 한부분.그래도 많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개선되는 추세다.그렇다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직장에서는 어떨까? 남성집단과 달리강요하는 술자리도 없고,합리적이고 화목한 분위기가 조성될까? 여성이 대부분인,그래서 ‘여성문화’를 겪는 일부 남성 직장인들도 나름대로 애환을 겪는다.남성이 말하는 여성문화의 문제점을 들어보자.

●””저도 남자예요””

한맥 영화사 마케팅팀 ‘청일점’인 리주영(27)씨는 여자들과 일하는 어려움으로 ‘야한’옷차림과 ‘흐트러진’자세를 가장 먼저 꼽았다. 5명의 팀원가운데 유일한 남자이다보니 아예 없기나 한 것처럼 취급한다는 것.

“동료가 책상의자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게 우연히 눈에 들어오면 얼굴이 화끈거린다.”라면서 “처음에는 무안해서 내가 자리를 피했지만 요즘에는 ‘다 보여요.’라고 항의한다.”라고 겸연쩍어했다.지난 99년사회에 첫발을 디딘 뒤로 계속 ‘여초(女超)’인 직장을 다닌 그는 여자들의 내숭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곱창 안주로 소주를 2~3병씩 마시고,목소리도 걸걸하던 여자들이 남자친구 앞에서는 엄청 얌전을 떨어요.그러면 ‘이 여자가 내가 아는 그 사람이야’라는 생각까지 든다니까요.”리씨는 직장 때문에 여자친구와 두달전 헤어졌다.늘 여자들이랑 붙어다니는 그를 오해해 다툼이 자주 있었던 것.그러나 여자랑 일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그는 “어디가서건 장남같다는 소리는 듣지 않아요.권위적이거나 보수적이지 않다는 말이죠.”라면서 여성세계에서의 생활이 자신의 성격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어떤 직장이든 여자랑 남자가 비슷한 비율로 있어야”

경기도 수원에 있는 ‘보람 유치원’의 이강원(27)씨는 유치원에서 유일한 남자교사다.이제 8년째인 그는 한창 뛰어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최고의인기를 누린다.그러나 이렇게 경력을 쌓기까지 한두가지 애환을 겪은 것이 아니다.4~5년전만 해도 남자 유치원 교사를 겪어 보지 않은 유치원 원장들이 그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를 탐탁치 않게 여긴 것. 간신히 일자리를 얻고나서도 신망을 얻고자 몇배나 노력을 기울였다.동료 교사들에게 ‘잘 보이려고’자주 ‘대접’하기도 했다고 한다.

“여자 동료들이요? 얻어먹을 때는 좋아하면서도 살 때는 인색해요.게다가 제가 남자라고 자꾸 저보고만 밥사라고 할 때는 솔직히 얄미워요.” 수업진행 방식에서도 마찰을 빚었다.

“여자들은 변화나 모험을 싫어해요.항상 지난해와 같은 곳으로 소풍을 가고,지난해와 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하죠.”현재 수원시내 유치원들에서 가장 인기 높은 ‘제부도 갯벌탐험’은 그가 처음 개발한 소풍 아이템.당시에는 다른 교사들의 반발이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유치원에서 이곳으로 소풍을 간다.그는 “박봉과 편견 때문에 유치원 교사를 그만두려고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그러면서도 “학교 다닐 때는 과에 남자는 나뿐이라 대리출석 부탁도 못하고,따돌림도 많이 받았는데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이라고 웃었다.

●“질투는 제발 그만!”

메이크업 학원인 신단주 아카데미의 홍보담당 문정호(28)씨는 여성들과 주로일하는 어려움으로 사소한 질투심을 먼저 들었다.“‘정호씨,○○씨에게는 수첩 줬다면서 나에게는 왜 안 줘요?’라고 사사건건 질투를 할 때면 맥이 탁 풀리죠.”중·고교를 모두 남녀공학 학교에서 다닌 그는 여자가 많은 직장에 들어가는 일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오히려 ‘꽃밭’에서 일하게 됐다고 좋아하기도 했다는 것.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만만치가 않았다.

“남자화장실도 제 사무실 옆에만 있고 다른 곳에는 없어서 불편할 때가 많죠.행동도 조심해야해요.금세 구설에 오르거든요.” “술자리에서 저보고 술을 따르라고 해요.게다가 남자라는 이유로 술자리 뒤치다꺼리까지 저 혼자의 몫입니다.”“정수기 물을 교체하는 일은 어렵지도 않은데 꼭 나만 시켜요.”힘든 점을 묻자,봇물 터지듯 줄줄이 쏟아낸다.하지만 “생일에 선물을 챙겨주더군요.남자가 대부분인 직장에서는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죠.”라면서 여자동료자랑도 잊지 않았다.

“여자가 많은 집단에도 조직사회의 문제점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서로를 배려하면서 이를 극복하도록 노력해야죠.”

이송하기자 songha@

★전문가 제언

여자가 많은 직장,또는 남자가 많은 직장에서 일하는 반대의 성(性)은 흔히 직장생활을 견뎌내기가 어렵다.한쪽 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할 때 그렇지 못한 소수는 ‘문화적 충격’을 겪기 십상이다.이때 소수는 ‘일이 싫어서’가아니라 ‘분위기가 싫어서’중도하차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또는 반대 성의 행동패턴에 동화해 ‘남자같은 여자’‘여자같은 남자’가 되기도 한다.이같은 상황을 극복하는 적절한 방법을 전문가들에게서 듣는다.

한국여성개발원 김용옥 박사는 “특정 성에 편중된 직장에선 다른 성이 뿌리내리기 힘든 분위기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라면서 “이를 극복하려면 제도적인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여자가 적은 직업에는 여자고용할당량을,남자가 적은 직업에는 남자 고용할당량을 주어야 한다는 설명이다.김 교수는 “유치원 교사나 초등학교에서 남성교사가 부족하다 보니 아이들이 여성적으로 자라게 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일반 직장에서도 남녀 성비율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샛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성과 남성성은 상반된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성만으로 구성된 집단의 ‘조직문화’중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면서 “‘여자들은 다 저래’‘남자들은 모두 문제야’라는 식으로 치부하지 말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지만,대체로 여성으로만 구성된 직업은 임금수준이 낮고,남자들로만 구성된 직업은 일이 고된 특징이 있다.”면서 “임금수준과 노동의 특성을 감안한 성 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송하기자
2002-12-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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