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메인스트림의 눈물

[열린세상]메인스트림의 눈물

이재현 기자 기자
입력 2002-12-26 00:00
수정 2002-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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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눈물을 보았다.정계 은퇴를 발표하면서 이회창씨는 세 번에 걸쳐 눈물을 보였다.이른바 메인스트림의 눈물이다.노무현 당선자는 아주 어렵던 시절,문성근씨의 연설 도중에 눈물을 흘렸고 이 장면은 광고에도 활용되었다.보통 사람의 눈물이다.

고백하자면,나는 이회창씨가 눈물을 흘릴 때 눈시울이 약간 뜨거워졌다.또,고백하자면 나는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될까 두려워 권영길씨를 찍지 못했다.그것도 세 시간 반이나 기차를 타고 시골집에 내려가서 투표를 했다.그런 내가 이회창씨의 눈물에 감응한 것은 내 자신의 인생 패배와 회한이 순간적으로 왈칵 몰려들어서 그랬다.

나는 감히,이회창씨가 그전에 과연 몇 번이나 울어보았을까를 상상해 본다.아파트 전세금이나 자녀의 등록금이나 부모님의 수술비가 모자라서 울어본적이 있었을까.지방대 출신이라고 취직이 안 되어서 눈물을 흘려보기나 했을까.메인스트림은 이런 이유로는 결코 울지 않는다.

나는 또 감히,이번의 패배를 통해 이회창씨가 인생을 더 깊이 배우게 되었다고생각한다.대통령직만 빼놓고 이회창씨는 다 해보았다.이회창씨는 인생에서 큰 실패를 모르고 살아왔으리라 짐작된다.그런 이회창씨는 허리를 낮추고 점퍼 차림으로 시장에서 보통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거나 두 엄지를 세워흔들며 젊은이들의 노래에 장단을 맞춰야만 했다.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실패했고 회한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게다가,이회창씨는 선거 기간 동안 메인스트림 내부의 수구 반동 분파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부시의 사과와 소파의 개정을 요구했다는 이유로해서 정치적 생명뿐 아니라 물리적 생명까지도 위협을 받았던 것이다.그런만큼 이회창씨의 회한과 눈물은 할리우드 액션이 아니다.

나는 이회창씨의 눈물이 개인이나 국가를 위해서 역설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회한 없는 인생이란 없다.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십년이 아니라 수십년을 고생하게 만드는 잘못과 실패를 우리는 곧잘 저지른다.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적어도 보통사람들은 그렇다.

그러나 정치와 사회 시스템과 관련지어 말하자면,국민들이 흘린 눈물의 상당 부분은 개인의 잘못에서 생겨났다기 보다는 우리가 이제까지 살아 온 ‘대∼한민국’이 ‘나라다운 나라’가 아닌데서 비롯된 것이다.예컨대,권영길씨식으로 표현한다면,무상 교육,무상 의료가 보장되는 나라만이 ‘나라다운나라’다.그러니까,노무현씨의 눈물은 보통사람의 눈물에서 비롯됐다.잘못된 사회 시스템 아래에서 보통사람들이 수십년간 흘려온 피눈물이 노무현씨를대통령으로 만든 것이다.

이회창씨는 물러나면서 메인스트림을 향해서 개혁적 보수로의 자기 혁신을당부했다.대통령이 되었다면 이회창씨는 분명히 법과 원칙이 바로 서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국민은 그 이상을 원했다.권영길씨와 김영규씨의 득표까지 합해서 말한다면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평화 속의 개혁적 진보를 원했다.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 대통령이라는 직업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3D 업종에속한다.스트레스가 심한 것은 물론이요,레임덕이라는 직업병까지 있다.또 아직까지는 퇴직 전이나 후에많은 이로부터 경멸을 받는 직업이다.설령 이회창씨가 당선자가 되었더라도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노 당선자 대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진을 실었듯이 한국의 부시란 이름으로 이승만의 사진을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이회창씨는 너무 회한에 빠져 괴로워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이회창씨는,진정으로 인생에서 대세론이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깨우쳐 주는 반면교사다.

더구나 그는 46.6%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었던 패배를 통해서,수구 반동적 보수가 아닌 개혁적 보수라는 정치적 의제를 한국 사회에 던졌다.분단과 전쟁 이래 보수 진영의 가장 장엄한 사건이다.이제,자연인 이회창씨의 건승을 빈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2002-12-2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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