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다일천사병원 행려병자들의 성탄절

서울 다일천사병원 행려병자들의 성탄절

입력 2002-12-25 00:00
수정 2002-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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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고단한 인생이지만 천사 같은 이웃이 있어 행복한 성탄을 보내게됐습니다.”

독거노인과 행려병자가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있는 서울 동대문구 전농1동다일천사병원에도 크리스마스는 찾아왔다.어둠이 짙게 깔린 성탄 전야.4층병실에는 독거노인과 행려병자 20여명이 침상에 누워 있었다.창문 너머에는성탄절을 즐기려는 가족과 연인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선모(54)씨는 물끄러미 창 밖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하반신을 못쓰는 반신불수로 오랫동안 노숙생활을 했지만 올 크리스마스는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서 잠을 청하지 않아도 된다.“내 생전 이렇게 포근한 침대는 처음이야.이제는 가족도 생겼어.”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 70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얼굴에는 살며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건너편 침대에 누워 있는 박모(28)씨는 지난해 10월 교통사고로 뇌를 다쳤다.사고 후 남은 것은 서너살배기 수준의 지능과 스스로 가눌 수 없는 육신뿐이었다.불의의 사고는 아들과 아내를 둔 건장한 청년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다일천사병원에 오기전 다른 병원에 입원했을 때 눈덩이처럼 늘어난 병원비 때문에 아내와 가족도 연락을 끊어버렸다.다행히도 처음 입원했던 병원측의 주선으로 얼마전 이곳으로 옮긴 뒤 자원봉사자에게 혼자 밥먹는 법과말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노숙자의 ‘대부’로 알려진 최일도(崔一道·45) 목사가 지난 10월 다일천사병원을 차린 이후 행려병자·독거노인·외국인노동자 등 갈 곳 없는 환자들이 무료 진료 등 ‘사랑의 인술(仁術)’을 받고 있다.

준 종합병원 수준에 한달 경영비만 1억 5000만원.사람의 계산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을 해내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천사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로부터 나온다.8년간의 성금 60억원으로 세워진 병원에는 1층부터 4층까지 기부자의 명패들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여건이 열악한 탓에 상근의사는 1명뿐이지만 많은 자원봉사 의사들이 환자 치료를 돕고 있다.이들은 두팀으로 나눠저녁 9시까지 환자들을 돌본다.모두 종합병원이나 개인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현직 의사들이지만 1주일에 하루씩 기꺼이 시간을 낸다.

식당일부터 빨래·청소·환자 목욕 등 궂은 일은 150여명의 자원봉사자 몫이다.사랑의 봉사가 주위에 알려지면서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문의전화와 이메일도 하루 수십통씩 쇄도한다.불교단체 등 다른 종교 신자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자원봉사자 유현주(32·여)씨는 “봉사를 한다는 생각보다는 배운다는 생각이 더 크다.”고 말했다.

“많이 가졌다고 많이 베푸는 것은 아닙니다.이곳에서 봉사하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돈과 명예와는 거리가 먼 소시민들입니다.우리 사회를 밝게 이끄는 분들이지요.”어느 때보다 보람찬 성탄 전야를 보내는 자원봉사자 이호영(38)씨의 얼굴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영규기자 whoami@
2002-12-2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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