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포럼] 농정 실패 되풀이할건가

[대한포럼] 농정 실패 되풀이할건가

염주영 기자 기자
입력 2002-11-23 00:00
수정 2002-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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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을 걸고 쌀 시장개방을 막겠습니다.” 대통령선거 유세 막바지에 김영삼 민자당 후보는 이렇게 공약했다.당시 협상 테이블에서는 농산물 수출국들이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 쌀 시장개방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었고,국내에서는 ‘시장개방 결사 반대’를 외치는 농민·시민단체들의 시위가 연일 이어졌다.우루과이 라운드(UR)협상이 본격화하기 시작할 무렵인 지난 1992년 말의 일이다.

그로부터 1년 뒤인 93년말.그는 다음과 같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다.“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데 대해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대통령 취임 이후 쌀 개방을 막기 위해 전력투구했지만 선거유세에서 한 공약은 수포로 돌아갔다.이어 정부는 농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들을 쏟아냈으며,무려 57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자금이 동원됐다.

그러나 UR협상에서부터 그 후속 대책들에 이르기까지 지난 10년간의 농정은 한마디로 실패했다는 평가를 면할 수 없다.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57조원의 자금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농업의 경쟁력은 여전히취약하고,농가부채만 커졌다.도대체 그 많은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제대로 된 종합보고서 하나없다.농가부채는 가구당 평균 2000만원을 넘어 섰고,도·농간의 소득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한국농업이 직면하고 있는 지금의 위기적 상황은 10년 전의 UR협상 때와 너무도 닮은꼴이다.대외적으로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시작되고 있고,국내에서는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전이 한창인 점이 그렇다.개방협상과 대선이 시기적으로 맞물려 있는 것은 국가적인 불운이다.농업문제를 ‘정치논리’에 의존하게 함으로써 상황을 더욱 꼬이게 하기 때문이다.각당의 대통령후보들이 YS가 그랬던 것처럼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다니는 것도 그렇다.농민들에게 “시장개방을 최대한 막겠다.”고 약속하고 있다.‘대통령직을 걸고’라는 문구가 빠지고 ‘최대한’이라는 수식어가 추가된 것 말고는 YS의 ‘공약(空約)’과 일치한다.

이쯤 되면 정부와 정치권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그림이 그려진다.누가 집권을 하든 협상이 끝나는 오는 2004년에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게 될 것이다.그러고 나면 농민시위가 격해지고 정부는 허겁지겁 대책들을 쏟아내는데 거기에는 수십조원이 들어간다.그러면 농민들도 조용해지고 사태가 한 고비를 넘게 되겠지만 농업문제는 여전히 미해결의 과제로 잠복해 다음 정부에 짐으로 남을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차기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DDA협상을 떠맡아야 한다.이 협상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의 대안은 두가지다.첫번째는 저율관세로 매년 일정량의 쌀(300만섬정도 예상)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방안이다.두번째는 국내외 가격차만큼 고율 관세를 물리는 대신 수입물량은 제한하지 않는 방안이다.전자는 ‘최소시장접근(MMA)’ 방식이고,후자는 ‘관세화’ 방식이다.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지금보다 개방폭이 현저하게 확대되므로 국내 쌀농가들이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 뜻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국제협상이다.특히 DDA처럼 다자간 협상인 경우 더욱 그렇다.이제라도 각당의 대선 주자들은 그 실상을 농민들에게 소상히 알리고 개방이 되더라도 농업·농민이 살아갈 수 있는 정책구상을 제시해 이해를 구해야 한다.숨긴다고 될 일이 아니다.실현가능성 없는 공약을 하는 것은 상황을 더욱 꼬이게 할 뿐이다.지난 10년의 농정실패를 되풀이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염주영 논설위원 yeomjs@
2002-11-23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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