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악법도 법’

[씨줄날줄] ‘악법도 법’

우득정 기자 기자
입력 2002-11-13 00:00
수정 2002-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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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사 출신 중진의원 P씨는 10여년 전 양 김씨(김영삼·김대중)와 율사 출신 정치인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내린 적이 있다.

“양 김씨의 정치는 법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정치다.법이 앞을 가로막으면 ‘악법은 무시해도 된다.’는 논리로 거리낌없이 법의 울타리를 깨부수어 버렸다.하지만 율사 출신들은 법의 울타리에서 살아 왔고,훗날에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법이 정한 경계선을 넘지 못한다.”

유신과 5공이라는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양 김씨는 이따금 법을 초월할 수있었기 때문에 ‘보스’가 된 반면 율사 출신들은 법의 테두리에 옭매였기 때문에 잘해야 ‘중간 보스’ 또는 참모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P씨의 진단이었다.

지난 2000년 4·13 총선을 앞두고 ‘바꿔’ 열풍을 몰고 온 총선연대는 현행법이 금지한 낙천·낙선운동 대상자의 명단 공개 문제로 고심을 거듭했다.이들은 훗날 사법 처리라는 죄값을 치러야 했다.당시 사법부는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자연법이 실증법을 우선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권위주의 정권의 체제 수호 논리’에서 ‘법의 안정성 확보’에 이르기까지 시대 상황이나 정권의 성향에 따라 다른 논리가 동원되기는 했으나 ‘악법도 법’이라는 명제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된다.지키는 사람과 지키지 않는 사람의 형평성 문제가 거론되는가 하면,국가보안법 일부 조항의 경우 악법으로 보느냐,아니냐에 따라 진보와 보수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가 초등 6학년 도덕교과서의 ‘함께 지키자-법을 존중한 소크라테스’ 단원에서 소크라테스의 항변이라고 소개한 ‘악법도 법’이라는 말이 지금의 법 정신과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삭제를 권고했다고 한다.‘악법도 법’이라는 명제에 대해 소크라테스의 본심을 왜곡해 체제 수호에 악용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법망을 피해 가는 악인들을 초법적인 위치에서 처단하는 내부의 적과 맞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더티 하리’나 지난해 개봉된 국산영화 ‘이것이 법이다’에 적지 않은 관객들이 공감한 것을 보면 사물을 한편에서만 재단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
2002-11-13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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