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포럼] 힐러리 콤플렉스

[대한포럼] 힐러리 콤플렉스

신연숙 기자 기자
입력 2002-11-12 00:00
수정 2002-11-12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대통령 선거가 한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각 당 후보에 대한 검증 작업과 함께 장래 ‘대통령 부인감’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지고 있다.여성 잡지들은 후보 부인들에 대한 스토리를 앞다퉈 싣고 일간지,여성 전문신문,여성유권자단체 등은 후보 부인들의 생각을 직접 듣기 위해 인터뷰,토론회 등을 기획하고 있다.

대통령 부인이라는 자리가 대통령,혹은 국정에 미치는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감안할 때 이런 관심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후보 부인들이 이러한 자리를 극구 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의 퍼스트레이디들 중엔 남편과 자신을 철저히 분리해 행동한 사례가 있긴 하다.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부인 다니엘라는 남편이 대통령이 된 후에도 사저에 살면서 인권 운동을 계속했다.조스팽 전 프랑스 총리 부인 실비안은 남편이 선거 운동을 할 때조차 파리고등사회과학원 철학과 교수로서 자기 일에 전념했다.

하지만 우리의 퍼스트레이디 후보들이 이들처럼 자신의 커리어나 가족들과의 사생활 유지를 위해 앞에 나서길 꺼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불우시설을 방문한다거나 각종 종교·사회단체 행사 등에는 부지런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전통적 고정 관념을 들 수 있겠다.한국에는 ‘3대 힐러리’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힐러리는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으로 적극적인 정치활동으로 유명했고 현재는 뉴욕주 상원의원이다.하지만 한국에서 ‘힐러리’는 ‘잘 나가는 남편 옆에서 눈에 띄게 설치는 꼴불견 여자’쯤으로 해석된다.‘3대 힐러리’로 불린 부인들은 하나같이 적극적인 성격과 세련된 패션감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힐러리’라 불릴 땐 이런 점들의 긍정적 측면은 사라지고 부정적 측면만 강조돼 공격 대상이 돼 버린다.우리 대권후보들은 이들처럼 ‘행여 튀어 보일세라’ 부인을 대중의 눈으로부터 떼어놓기로 작정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대선후보 부인들이 자신을 드러내길 꺼리는 것은 전직 대통령 부인들의 행적과도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우리나라 대통령 부인들에는 적극적인 활동을 한 유형과 전통적인 내조형으로 일관한 두 가지 유형이 있다.적극형 부인들은 자신이 직접 사회봉사단체 등을 만들어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막강한 영향력으로 정부인사 등에 개입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이에대한 반작용인지 적극형 퍼스트레이디 다음 대엔 전통적 내조형 퍼스트레이디가 나왔다는 사실도 흥미롭다.현재의 퍼스트레이디가 여성운동가 출신이고 보면 다음 퍼스트레이디는 전통적 내조형이 호감을 살 것이란 계산을 후보측은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밖에도 현실적으로 후보 가족들에게 쏟아지고 있는 각종 정쟁적 의혹들이 부인들의 노출 기피증을 불러오고 있는 측면이 있다.상황이 민감할 때 부인들의 한마디가 긁어 부스럼이 되거나 말실수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숨어있을 수만은 없다.대통령 부인은 대통령을 움직이는 숨은 권력(hidden power)이라는 사실이 국내외 다양한 사례를 통해 드러났다.그렇기 때문에 후보 부인에 대한 검증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대선후보 부인들은 현재의 수동적 자세를 버리고 국민들 앞에 진실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국민들 또한 퍼스트레이디의 현실적 역할을 인정하고 그들의 소리를 경청할 자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여성이 나서면 될 일이 없다는 식의 ‘힐러리 콤플렉스’는 이제 과감히 벗을 때다.

신연숙 논설위원 yshin@
2002-11-12 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