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길섶에서] 풀잎

[2002 길섶에서] 풀잎

우득정 기자 기자
입력 2002-11-08 00:00
수정 2002-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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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 고개 꺾인,누운 풀잎에는 젊은 날 꼿꼿했던 공명심도 없다.11월의 찬 서리를 머금은 냉기서린 바람과 묵직한 발자국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시인 김남주는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라고 했다.바람에 울고 웃는 풀잎처럼 오월은 서정적으로 오지 않는다며 누운 풀잎의 유약함을 꾸짖었다.하지만 시인 조지훈은 ‘한 줄기 바람에도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번뇌하고 부대끼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풀잎은 이처럼 시인에 따라 자신이 되기도 하고 타인이 되기도 한다.

‘검찰 구타 사망’ 사건으로 물러난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 “태산같이 의연하되 누운 풀잎처럼 겸손한 자세로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다해달라.”는 당부의 말을 검찰 후배들에게 남겼다고 한다.공명심이 앞선 나머지 틈만 나면 머리를 곧추세우려는 검사들의 속성을 경계한 말이리라.‘모든 생물은 땅으로 누울 때 겸손하나니…’ 농부들이 가을 들녘에서 배운 교훈이 새삼 생각난다.

우득정 논설위원

2002-11-0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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