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빚 연체 비상] (2)늘어난 빚쟁이

[가계 빚 연체 비상] (2)늘어난 빚쟁이

김유영 기자 기자
입력 2002-10-28 00:00
수정 2002-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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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자기형 신용불량자 급증

“열심히 돈 쓴 당신,갚아라.”

주부 김모(31)씨는 외출한 뒤 귀가하면서 현관문에 붙어있는 쪽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카드사 봉투에 쓰여있는 ‘방문 통고장 김○○ 귀하’라는 독촉장을 지나던 이웃들이 봤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낯이 화끈거렸다.전화로 연락해도 될텐데 이런 방법으로 창피를 준 카드사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김씨는 카드사의 이런 행태를 금융감독원에 신고했다.

김씨같은 신용불량자는 245만 5127명(9월말 기준)이나 된다.3개월 넘게 30만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는 채무자만 대상으로 한 것이다.소액 채무자,백화점 카드대금 및 휴대폰 요금 연체자 등을 합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채무자가 급증하면서 금융기관과 채무자간에는 연체금을 받아내려는 ‘전쟁’이 치러지고 있다.특히 대부분 담보를 확보한 은행과 달리 소득도 확인하지 않고 대출해준 카드사의 경우 빚 회수가 더욱 시급한 과제로 등장했다.사무실을 찾아가 빚독촉으로 망신주기,등하교 길의 자녀 가방에 독촉장 찔러넣기,집안 애완견의 귀에 스테이플러로 독촉장을 찍어놓는 등 섬뜩한 방법도 동원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이에 따라 지난 5월 제 3자에게 빚독촉을 하거나,밤 9부터 아침 8시까지는 전화 등으로 빚독촉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그래도 연체율과 연체금을 줄이려는 업체들의 빚독촉은 끊이지 않는다.

1400만원을 대금업체에서 빌려 700만원을 갚지 못한 황모(36)씨는 빚독촉에 시달리다 지난 8월 결국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대금업자들이 회사로 전화를 걸어 동료들에게 자신이 빚진 사실을 알리는 바람에 얼굴을 들고 회사를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또 다른 연체자인 정모(42)씨는 최근 전화 녹음기를 사서 독촉전화 내용을 녹음해 두고 있다.여차하면 금융감독당국에 신고할 참이다.금융기관들은 채무자에게 다시 대출받아 기존의 빚을 갚는 대환대출을 강요하기도 한다.카드빚 1900만원을 연체한 이모(24)씨가 연리 20%의 대환대출로 떠안게 된 2년동안의 추가 빚은 900만원.이씨는 “원금을 갚기도 버거운 판에 이자 900만원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며 한숨을 쉬었다.이런 ‘돌려막기’채무자까지 감안하면 실제 신용불량자는 훨씬 더 많은 셈이다.

A카드사가 밝힌 올해 3·4분기 연체율은 3.1%로 전분기의 2.7%보다 높아졌다.비교적 연체율이 낮은 이 회사의 경우에도 연체율은 전년동기 1.6%에 비해 두배 가량 급증했다.더욱이 빚을 대신 받아 주는 추심업체에 지불한 비용은 상반기보다 72%,전년동기보다 35.3% 각각 늘었다.채무자들이 그만큼 빚독촉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이며 이를 뒤집어 보면 채권 금융기관들의 빚 회수가 어려워졌음을 뜻한다.실제 B카드사의 경우 상반기 추심담당 직원의 주당 빚 회수 건수가 20건에 달했으나 요즘에는 4∼5건에 불과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한기(金漢基) 부장은 “카드사와 연체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에 금융감독원에서 구체적인 실태파악을 통해 개인워크아웃제도를 현실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한다.”고 촉구했다.

한편에서는 소득이 없는데도 빚을 지고 독촉을 당해도 갚을 생각이 없이 ‘배째라’식으로 버티는 채무자도 적지 않은 등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현상도 심각하다.연체자의 급증은 소비위축의 한 요인이 되며 채무자가 빚을 갚기 위해 부동산 등을 매각할 경우 경기를 냉각시키는 점에서 파급 효과가 심상치 않다.그동안 대출을 얻어 부동산을 사면서 경기활황이 진행된 것과 정반대의 과정으로 경기위축이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유영기자 carilips@
2002-10-28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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