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히딩크 귀화론’의 사회학

[대한광장] ‘히딩크 귀화론’의 사회학

이상민 기자 기자
입력 2002-06-27 00:00
수정 2002-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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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상에서 히딩크 감독을 귀화시키자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네티즌들은 그의 이름과 비슷한 우리식 ‘희동구’란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고 한발 더 나아가 정부는 그에게 명예국적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 모두가 우리를 미소짓게 만드는 흐뭇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우리나라의 축구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히딩크 감독에게 우리 국민 특유의 깊은 애정과 관심에서 나온 발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소위 ‘히딩크 감독 귀화설’은 우리가 평상시 강하게 가지고 있는 ‘내 집단’ 의식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주지하다시피 우리 국민들은 강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다.여기에서의 민족개념은 혈통과 언어,역사적 전통과 같은 문화적 동질성을 중심으로 민족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히딩크 감독이 ‘우리편’이라는 동질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를 ‘우리’라는 연결망(network) 속으로 끌어들여야 한다.하지만 이는 우리와 남을 가르는 경직된 이분법적 사고로 이어져 진정한 의미의 민족주의가 아닌 부족주의와 연고주의를 생산하기 쉽다.

월드컵을 통해 진정한 사회통합을 이루려면 그동안 우리 사회에 깊숙이 배태되어있는 ‘제한된 신뢰(bounded trust)’의 속성을 극복해야 한다.여기서 제한된 신뢰란 신뢰가 미치는 반경이 자기 가족,친척,친구,회사,국가 등과 같이 연결망 내부인들에게만 제한돼 있는 배타적 신뢰를 의미한다.이 연결망 내부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한의 신뢰와 끈끈한 정을 보여준다.그리고 우리는 이를 한국인들의 특유한 정의 문화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연결망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가? 우리 사회 전반에서 소외받는 마이너리티들은 반드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만이 아니다.여기에는 장애인이나 외국인들도 포함된다.이들도 우리 연결망 내부에 일원이 될 수 있는 열린 시스템을 갖출 때 진정한 의미의 사회통합이 가능하다.

자!그렇다면 시내 곳곳에서 벌어졌던 월드컵 응원전을 보자.

응원전에서 발견되는 모습은 위에 언급한 제한된 신뢰가 철저히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붉은악마를 포함한 시민 응원단의 구성은 너무나 다양하다.여기에는 지연과 학연이 발붙일 곳이 없고 모두가 붉은 상의를 입고 하나 된 축제를 즐긴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즈먼이 이야기한 ‘군중 속의 고독’과는 차원이 다른 분위기이다.월드컵을 하나의 축제로 인식하고 이를 마음껏 즐김으로써 국민 모두가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이는 향후 우리 사회에 값어치로 따질 수 없는 무형의 사회적 자본이 될 것이다.

IMF 이후 우리 사회에 불거진 갈등을 치유하는 출발점으로서 중요한 경험을 국민모두가 나누어 가졌다는 학습효과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값어치를 갖기 때문이다.

월드컵이 우리 사회에 던져 준 화두는 ‘우리 함께하자.’였다.과거 우리들의 모습이 비슷한 배경을 가진 자들만의 분열된 뭉침이었다면,향후의 모습은 그 분열된 뭉침들이 하나의 큰 원안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연결망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기존의 ‘우리’라는 경계선의 외연을 넓혀야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가 외면하는 3D업종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그들도 우리에게 고마운 또다른 히딩크이기 때문이다.

이상민/ 삼성경제硏 수석연구원. 사회학 박사
2002-06-27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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