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댐 속으로 수장될 뻔했던 지리산 임천강을 다시 찾았습니다.남원 실상사에서 만수천 물길을 따라 함양땅에 들어서면,임천강입니다.백무동 들머리를 지나 의탄에 이르면 천왕봉 칠선계곡을 타고 내려온 물이 들어옵니다.
강가엔 벌써 알몸뚱이 초동들이 족대를 들고 뛰어다닙니다.물통 안에는 임천강의 해맑은 물고기들이 올망졸망 들어있습니다.
쉬리·돌고기·피라미·꺽지·돌마자·동사리·미유기·자가사리·수수미꾸리·새코미꾸리·왕종개·긴몰개·칼납자루·꼬치동자개….
하마터면 생죽음 당할 뻔한 목숨들입니다.
강줄기를 따라 의탄을 지나면 산에서 계단식 다락논들이 강가로 내려옵니다.임천강 유역은 지리산의 옛 농경지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척박한 기슭에는 밭을 일구고,물 흐르는 곳에는 논을 갈았던 옛 삶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산의 경사와 굴곡에 따라 미로처럼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논배미는 반만년 민족의 질긴 목숨 끈과도 같습니다.마을 식구들이 늘어날 때마다 한뼘씩 산위로 올라갔던 다락논은 자연을 거스르지않고 살아온 지리산 사람들의 순하디순한 심성 그대로입니다.
다락논은 바릅니다.비록 벼랑 같은 비탈에 아슬하게 붙어있지만,논바닥은 결코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습니다.바닥이 삐딱한 논은 이웃다락까지 망치게 하여 종내는 삽질을 당하고야 맙니다.
다락논은 자족(自足)을 압니다.아무리 넓어도 자기가 담을 만큼만 물을 담고 삽니다.그 나머지는 아래 다락으로 아낌없이 흘러보냅니다.윗다락에 있다고 해서 저 혼자만 둑 터지도록 물을 담아두는 일은 없습니다.
다락논은 참고 견디는 지혜를 보여줍니다.바닥이 아무리 메말라 터져도 윗다락에서 보내주는 물로만 제 목을 적십니다.더러 물꼬를 두고 삿대질이 오가기도 하지만,그건 사람들이나 하는 짓거리입니다.
다락논은 원만합니다.어느 한군데 모난 데 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둥글게 살아갑니다.모난 논배미는 그 비탈에서 살아날 수 없습니다.홍수 때면 모난 논들부터 무너진다는 걸 다락논들은 다들 잘 알고 있습니다.
임천강 다락논을 보면,문득 두고온 서울이 안쓰럽게 떠오릅니다.지금 서울은몇시입니까.유언비어에서 금품수수까지,진흙밭에 개싸움이 한창입니다.이 지상 어디에 다락논 같은 세상 없을까요.
김재일/ 두레생명문화硏 대표
강가엔 벌써 알몸뚱이 초동들이 족대를 들고 뛰어다닙니다.물통 안에는 임천강의 해맑은 물고기들이 올망졸망 들어있습니다.
쉬리·돌고기·피라미·꺽지·돌마자·동사리·미유기·자가사리·수수미꾸리·새코미꾸리·왕종개·긴몰개·칼납자루·꼬치동자개….
하마터면 생죽음 당할 뻔한 목숨들입니다.
강줄기를 따라 의탄을 지나면 산에서 계단식 다락논들이 강가로 내려옵니다.임천강 유역은 지리산의 옛 농경지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척박한 기슭에는 밭을 일구고,물 흐르는 곳에는 논을 갈았던 옛 삶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산의 경사와 굴곡에 따라 미로처럼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논배미는 반만년 민족의 질긴 목숨 끈과도 같습니다.마을 식구들이 늘어날 때마다 한뼘씩 산위로 올라갔던 다락논은 자연을 거스르지않고 살아온 지리산 사람들의 순하디순한 심성 그대로입니다.
다락논은 바릅니다.비록 벼랑 같은 비탈에 아슬하게 붙어있지만,논바닥은 결코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습니다.바닥이 삐딱한 논은 이웃다락까지 망치게 하여 종내는 삽질을 당하고야 맙니다.
다락논은 자족(自足)을 압니다.아무리 넓어도 자기가 담을 만큼만 물을 담고 삽니다.그 나머지는 아래 다락으로 아낌없이 흘러보냅니다.윗다락에 있다고 해서 저 혼자만 둑 터지도록 물을 담아두는 일은 없습니다.
다락논은 참고 견디는 지혜를 보여줍니다.바닥이 아무리 메말라 터져도 윗다락에서 보내주는 물로만 제 목을 적십니다.더러 물꼬를 두고 삿대질이 오가기도 하지만,그건 사람들이나 하는 짓거리입니다.
다락논은 원만합니다.어느 한군데 모난 데 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둥글게 살아갑니다.모난 논배미는 그 비탈에서 살아날 수 없습니다.홍수 때면 모난 논들부터 무너진다는 걸 다락논들은 다들 잘 알고 있습니다.
임천강 다락논을 보면,문득 두고온 서울이 안쓰럽게 떠오릅니다.지금 서울은몇시입니까.유언비어에서 금품수수까지,진흙밭에 개싸움이 한창입니다.이 지상 어디에 다락논 같은 세상 없을까요.
김재일/ 두레생명문화硏 대표
2002-06-1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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