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용계에서 가장 많은 레퍼토리와 춤사위를 구사하는춤꾼으로 통하는 중진 무용가 조흥동(61·한국무용협회 이사장).그가 춤인생 50년을 돌아보는 무대를 15일 오후7시,16일 오후5시 문예회관 대극장서 갖는다.
“춤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데 벌써 5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어느 원로가 춤을 오래 출수록 중심이 안잡힌다는고뇌어린 말을 했었지요.지금 제 심경이 그것입니다.할수록더 힘든 게 한국춤인 것 같습니다.” 무대는 조씨가 9살의 나이로 한국춤에 입문할 때 춘 ‘초립동’을 비롯해 ‘태평무’‘남무3대’‘진쇠춤’‘승무’‘잔영’‘한량무’‘장고춤’ 등 8개 소품으로 구성된 1부와,서화담과 황진이의 사랑을 소재로 한 ‘화담시정’의 2부로꾸며진다.
이 가운데 천진난만한 사내아이(무동)의 마음을 그린 ‘초립동’은 신무용의 선구자인 고 조택원·최승희의 작품을 나름대로 재구성한 것.입문할 때의 감회를 되살려 재연한다.다른 소품들은 조씨가 가장 많이 추었고,또 가장 원숙한 형태로 다듬어낸 작품들이다.
‘태평무’는 조씨가무형문화재 강선영으로부터 남성무용수 제1호 이수자로 전수받아 남성 태평무의 맥을 잇고 있다는 평을 듣는 작품.경기도립무용단에서 활약 중인 조씨의 제자들이 무대에 오른다.‘장고춤’과 ‘잔영’ 역시 각각 제주도립예술단과 월륜춤연구보존회의 조씨 제자들이 선보인다.이밖에 ‘승무’는 수제자 김정학이,‘한량무’는 조씨가추며 ‘진쇠춤’은 그와 김정학이 호흡을 맞춘다.가장 눈길을 끄는 춤은 ‘남무3대’(男舞三代).조씨와 그의 제자 김정학,그리고 김정학의 제자인 대학생 2명 등 조흥동류의 직계3대의 맥을 잇는 레퍼토리로 조씨 춤의 흐름과 맥을 집약해보여준다.
경기도 이천 부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조씨는 집안의 반대 탓에 지금의 명성을 얻기까지는 험한 춤 인생길을 걸어왔다.실제로 중앙대 예술대학을 졸업한 뒤 이 대학 사회개발대학원에서 법학 공부를 했던 이력은 이를 잘 말해준다.그러나놀이패와 굿판이 벌어지는 곳이면 어김없이 마을 춤꾼들을사이에 끼여 춤을 추었던 어린시절의 ‘끼’는 여성천하의한국무용계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굳혀놓고야 말았다.전통춤의 대가를 찾아다니며 춤을 사사할 때도 창작춤의 개념이 강한 ‘신무용’을 고집해 당시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었다고털어놓는다.
“한국무용은 결코 현란한 테크닉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핏속에 흐르는 자연스러운 ‘영감’을 어떻게 승화시키고 풀어내느냐 하는 게 중요합니다.그래서 어찌보면 서양의 무용보다 더욱 힘이 든다고 봅니다.” ‘신무용’으로 평가되는 자신의 춤이 고전적인 전통춤과다소 다르다는 평가에 대해,조씨는 현대무용의 대가 마사 그레험도 발레를 마스터한 뒤 현대무용을 개척한 예를 들며 “한국춤꾼들은 뿌리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호기자 kimus@
“춤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데 벌써 5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어느 원로가 춤을 오래 출수록 중심이 안잡힌다는고뇌어린 말을 했었지요.지금 제 심경이 그것입니다.할수록더 힘든 게 한국춤인 것 같습니다.” 무대는 조씨가 9살의 나이로 한국춤에 입문할 때 춘 ‘초립동’을 비롯해 ‘태평무’‘남무3대’‘진쇠춤’‘승무’‘잔영’‘한량무’‘장고춤’ 등 8개 소품으로 구성된 1부와,서화담과 황진이의 사랑을 소재로 한 ‘화담시정’의 2부로꾸며진다.
이 가운데 천진난만한 사내아이(무동)의 마음을 그린 ‘초립동’은 신무용의 선구자인 고 조택원·최승희의 작품을 나름대로 재구성한 것.입문할 때의 감회를 되살려 재연한다.다른 소품들은 조씨가 가장 많이 추었고,또 가장 원숙한 형태로 다듬어낸 작품들이다.
‘태평무’는 조씨가무형문화재 강선영으로부터 남성무용수 제1호 이수자로 전수받아 남성 태평무의 맥을 잇고 있다는 평을 듣는 작품.경기도립무용단에서 활약 중인 조씨의 제자들이 무대에 오른다.‘장고춤’과 ‘잔영’ 역시 각각 제주도립예술단과 월륜춤연구보존회의 조씨 제자들이 선보인다.이밖에 ‘승무’는 수제자 김정학이,‘한량무’는 조씨가추며 ‘진쇠춤’은 그와 김정학이 호흡을 맞춘다.가장 눈길을 끄는 춤은 ‘남무3대’(男舞三代).조씨와 그의 제자 김정학,그리고 김정학의 제자인 대학생 2명 등 조흥동류의 직계3대의 맥을 잇는 레퍼토리로 조씨 춤의 흐름과 맥을 집약해보여준다.
경기도 이천 부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조씨는 집안의 반대 탓에 지금의 명성을 얻기까지는 험한 춤 인생길을 걸어왔다.실제로 중앙대 예술대학을 졸업한 뒤 이 대학 사회개발대학원에서 법학 공부를 했던 이력은 이를 잘 말해준다.그러나놀이패와 굿판이 벌어지는 곳이면 어김없이 마을 춤꾼들을사이에 끼여 춤을 추었던 어린시절의 ‘끼’는 여성천하의한국무용계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굳혀놓고야 말았다.전통춤의 대가를 찾아다니며 춤을 사사할 때도 창작춤의 개념이 강한 ‘신무용’을 고집해 당시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었다고털어놓는다.
“한국무용은 결코 현란한 테크닉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핏속에 흐르는 자연스러운 ‘영감’을 어떻게 승화시키고 풀어내느냐 하는 게 중요합니다.그래서 어찌보면 서양의 무용보다 더욱 힘이 든다고 봅니다.” ‘신무용’으로 평가되는 자신의 춤이 고전적인 전통춤과다소 다르다는 평가에 대해,조씨는 현대무용의 대가 마사 그레험도 발레를 마스터한 뒤 현대무용을 개척한 예를 들며 “한국춤꾼들은 뿌리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호기자 kimus@
2002-03-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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