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해 맞이 남북 공동 모임’이 무산됐다는 뉴스를접하며 지난달 남북 선사유적 관련 학술교류 협의차 평양을방문했던 당시가 새삼 생생히 떠오른다.
착륙 전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평양 시내는 고층빌딩사이에 고대 유적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깨끗하고 정비된근대 도시의 모습이었다. 필자와 김충환 서울시 강동구청장등 방북단 일행은 남북관계를 총지휘하고 있는 허혁필 민족화해협의회 부회장을 위시한 북한 관계자들의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는 신석기주거지를 비롯한 수많은 유적이,평양시 강동군에는 단군릉을 위시한 여러 유적들이 밀집돼 있기 때문에,두 지역간의 유적을 통한 학술교류 추진을 위한 첫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한민족이 한반도에 이룩한 역사는 남북한 어느 한 쪽의 연구 성과만 가지고는 제대로 밝혀낼 수 없다.더구나 역사의첫 장을 장식하는 선사시대는 우리 조상이 남겨 놓은 유적과 유물로만 연구가 가능한데,해방 후 가로막힌 장벽 때문에 남북교류가 막힌 상태로 오늘에 이르렀다.이러한 상황에서오히려 남북한을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는 일본이나 그밖의 제3국 학자의 견해가 우리 역사 연구를 주도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해방 후 한국 선사고고학자로서는 처음으로평양을 방문한 필자로서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평양 중심부의 김일성 광장에 있는 평양중앙역사박물관에는지난 50년간 북한 고고학자들이 힘써 발굴·조사한 유물 13만점이 전시,수장돼 있었다.민족의 보고로 손색이 없었다.
북한 학계는 그간 한반도에 구석기시대 존재의 최초 확인,신석기시대의 농경문화 최초 확인,일제시대에 부정됐던 청동기시대의 존재 확인 등 남한 학계에서는 연구의 체제조차갖추지 못한 시기에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바로 그런 증거물들을 하나하나 실견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아시아의 피라밋’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웅장한 단군릉도 돌아보았다.한 변의 길이가 50m,높이가 22m 규모로 만주 통구(通溝)의 장군총보다 세 배나 크다.물론 남한이나 일본 학자들 중에는 이 단군릉이 학술적 뒷받침이결여된상황에서 복원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삼국유사와 고려사·조선사의 기록에서 단군릉의존재가 확인되고,무덤에서 발굴된 뼈가 5000여년 전의 것이라는 북한 사회과학원의 연대추정 등으로 볼 때 단군을 단순하게 ‘신화’적 측면에서만 볼 수도 없는 일이다.이는의견을 달리하는 남북한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연구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이번 방문을 통해 필자는 놀라울 만큼 세련된 모습으로 정돈된 문화유적을 보면서북한이 남한 못지 않게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문화유산 정비작업을 벌여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높기만 한 이념의 장벽 때문에 남북간의 학술·문화교류는 미미했고,이에 따라 역사해석을 놓고도 양쪽 학자들간에 견해차가 적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지난 평양방문이 앞으로 이러한 견해차를 좁히는 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해온 필자로서는 최근 잇따른 남북교류무산 소식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정치·경제분야 못지 않게남북간 학술교류는 중요하고 시급하다. 이번 사태의불똥이남북간 문화·학술 교류에까지 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임효재 서울대교수 한국선사고고학회장
착륙 전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평양 시내는 고층빌딩사이에 고대 유적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깨끗하고 정비된근대 도시의 모습이었다. 필자와 김충환 서울시 강동구청장등 방북단 일행은 남북관계를 총지휘하고 있는 허혁필 민족화해협의회 부회장을 위시한 북한 관계자들의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는 신석기주거지를 비롯한 수많은 유적이,평양시 강동군에는 단군릉을 위시한 여러 유적들이 밀집돼 있기 때문에,두 지역간의 유적을 통한 학술교류 추진을 위한 첫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한민족이 한반도에 이룩한 역사는 남북한 어느 한 쪽의 연구 성과만 가지고는 제대로 밝혀낼 수 없다.더구나 역사의첫 장을 장식하는 선사시대는 우리 조상이 남겨 놓은 유적과 유물로만 연구가 가능한데,해방 후 가로막힌 장벽 때문에 남북교류가 막힌 상태로 오늘에 이르렀다.이러한 상황에서오히려 남북한을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는 일본이나 그밖의 제3국 학자의 견해가 우리 역사 연구를 주도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해방 후 한국 선사고고학자로서는 처음으로평양을 방문한 필자로서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평양 중심부의 김일성 광장에 있는 평양중앙역사박물관에는지난 50년간 북한 고고학자들이 힘써 발굴·조사한 유물 13만점이 전시,수장돼 있었다.민족의 보고로 손색이 없었다.
북한 학계는 그간 한반도에 구석기시대 존재의 최초 확인,신석기시대의 농경문화 최초 확인,일제시대에 부정됐던 청동기시대의 존재 확인 등 남한 학계에서는 연구의 체제조차갖추지 못한 시기에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바로 그런 증거물들을 하나하나 실견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아시아의 피라밋’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웅장한 단군릉도 돌아보았다.한 변의 길이가 50m,높이가 22m 규모로 만주 통구(通溝)의 장군총보다 세 배나 크다.물론 남한이나 일본 학자들 중에는 이 단군릉이 학술적 뒷받침이결여된상황에서 복원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삼국유사와 고려사·조선사의 기록에서 단군릉의존재가 확인되고,무덤에서 발굴된 뼈가 5000여년 전의 것이라는 북한 사회과학원의 연대추정 등으로 볼 때 단군을 단순하게 ‘신화’적 측면에서만 볼 수도 없는 일이다.이는의견을 달리하는 남북한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연구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이번 방문을 통해 필자는 놀라울 만큼 세련된 모습으로 정돈된 문화유적을 보면서북한이 남한 못지 않게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문화유산 정비작업을 벌여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높기만 한 이념의 장벽 때문에 남북간의 학술·문화교류는 미미했고,이에 따라 역사해석을 놓고도 양쪽 학자들간에 견해차가 적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지난 평양방문이 앞으로 이러한 견해차를 좁히는 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해온 필자로서는 최근 잇따른 남북교류무산 소식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정치·경제분야 못지 않게남북간 학술교류는 중요하고 시급하다. 이번 사태의불똥이남북간 문화·학술 교류에까지 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임효재 서울대교수 한국선사고고학회장
2002-03-0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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