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건호선생 영전에“민주언론 후배들에 맡기시고 고이 가소서”

송건호선생 영전에“민주언론 후배들에 맡기시고 고이 가소서”

장윤환 기자 기자
입력 2001-12-22 00:00
수정 2001-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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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부음(訃音)을 듣고 30년 넘게 가까이 모시며 직접 훈도의 은고(恩顧)를 입은 후학은 황망 중에 삼가 옷깃을 여미며 선생님 영전에 고합니다.

선생님께서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계시던 지난 1974년 10월 24일 편집국 기자들과 동아방송 사원들이 ‘자유언론실천운동’을 벌였을 때 선생님께서는 회사 경영진의 완강한 제동에도 불구하고 후배들보다 앞장서서 자유언론을 실천하셨습니다.이듬해 3월 회사가 박정희 정권의 광고탄압에 굴복해서 사원들을 축출하자,선생님께서는 스스로 사표를 던지셨습니다.이같은 결단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아닙니다.동아일보사에서 무더기로 쫓겨난 기자 프로듀서110여명은 ‘동아투위’를 결성하고 선생님을 정신적 지주(支柱)로 모시고 13년 동안 ‘거리의 언론인’시대를 견디게 됩니다.그 역경의 세월,선생님께서 걸어 오신 형극(荊棘)의 길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권력의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언론인’의 대표로서 재야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하셨습니다.후배 언론인들이 오히려 아슬아슬할 지경이었습니다.결국 선생님은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가 조작해 낸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얽혀 옥고를 치르시게 됩니다.당시 후학들은 “과연 천도(天道)라는 것은 있는가?” 하늘을 원망했습니다.그때 합수부 수사과정에서 당하신 그 야만적인 고문의 후유증이 결국 오늘 선생님과의 사별을 불러오게 된 것입니다.

1984년 75·80년 해직기자들이 중심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결성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의장직을 맡아 후배들을 지도하셨으며,‘민언협’기관지 ‘말’지의 ‘보도지침 폭로사건’을 통해 전두환 독재정권의 언론탄압 실상을만천하에 알리셨습니다.1987년 6월 항쟁을 거쳐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민주화가 좌절돼 민주진영이 더없는 낙담에 빠졌을 때,선생님께서는 몇몇 후배들과 기존 신문과는 전혀그 지향을 달리하는 ‘민주·민족 언론’의 창간을 구상하셨습니다.

청암선생님.저희가 미처 몰라서 하늘을 원망했지 ‘천도’는 분명 있습니다.오늘날 후배 언론인들이 선생님의 언론 정신을 굳건히 이어가겠다며결의를 다지는 것이 바로‘천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우리 시대의 마지막 언론인 청암선생님이시여,이 땅의 민주·민족언론은 후배들에게 맡기시고 눈을 감으소서.삼가 합장(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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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21일 대한매일 장윤환 논설고문.
2001-12-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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