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첫 여성 편집국장·사회부장을 만나다

언론계 첫 여성 편집국장·사회부장을 만나다

입력 2001-09-24 00:00
수정 2001-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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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 각 부문에서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진다.그러나아직 많은 직장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훨씬 ‘도전적인’자세로 사회와 가정생활을 꾸려야 한다.더욱이 드센 언론계에서 여성으로서 남성과 동등한 ‘대접’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이런 언론계에 최근 여풍(女風)이 거세게 불어눈길을 끈다.

1999년 한국일보 장명수 기자가 종합일간지 첫 여성사장에오른데 이어, 지난해 대한매일 임영숙 기자가 첫 논설실장에 임명됐다.올 4월에는 한겨레 권태선 기자가 일간지 첫사회부장에,지난 12일에는 일간스포츠 김경희 기자가 스포츠지 첫 편집국장에 임명됐다.

겉보기와는 달리 보수적인 언론계에서 편집국장과 사회부장에 오른 김경희 국장과 권태선 부장을 만나 남성사회 속의 ‘생존’ 노하우와 성공법을 들어본다.

■언론계에서 여성 성공주자로 나선 소감은.

▲김경희 국장:결혼도 안할 정도로 그저 일이 재미 있어 열심히 했을 뿐인데 여기까지 왔다.주위의 기대에 부응해 파격적이고 젊은 신문으로 답하겠다.

▲권태선 부장:‘성공’이라는 말은 부담스럽다.동업자로부터취재를 당하는 것도 쑥스럽고(웃음).일과 가정을 병행하며사실 일이 벅차 “못 견디겠어”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도 있지만 “여자라고 못할 것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버텼다.

■남성중심적인 언론사에서 생존한 비결이 있다면.

▲김 국장:여성들은 남자보다 조직생활에 약한 측면이 있다.

한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자기일보다 조직의 이익을 앞세우는 기본자세를 갖춰야 한다.

▲권 부장:파리특파원 때는 남편(연세대 교수)은 국내에 남겨두고 딸 둘을 데리고 갔다.우리 딸들이 이 다음에 좀더 일하기 편한 환경을 마련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했다.

■차별에 따른 에피소드는.

▲권 부장:사소하게 서운한 점은 있었지만 큰 기억은 별로 없다.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국제부를 택했고기혼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파리특파원도 지냈다.

▲김 국장:3년전이다. 4년아래 후배가 직속팀장으로 온 적이있다.출근도 안하고 사표를 낼까 고민하다가 3일만에 돌아왔다.‘이대로 그만두기에는 너무 억울해’하면서.

■승진,부서배치 등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는 어떻게 하나.

▲권 부장:방법상의 지혜가 필요하지만 문제가 있을때 제 목소리를 낼 필요는 있다.남성들은 어떤 때는 자신들이 차별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주의할 것은 사적인대응을 일삼으면 ‘불평분자’로 찍힐 소지가 있고 전체 여성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우리 신문은 여기자회라는 공식적인 창구를 만들어 공동대응을 한다.

▲김 국장:항의한 뒤 일단 납득할 수 없더라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받아들이면 불평하거나 태업하지 말라.

■술실력이 승진에 한몫했나.

▲김 국장:사실 오래,많이 먹는다(웃음).술자리에서는 동료들,부원들간에 훨씬 솔직하고 깊은 이야기들이 오가기 때문에좋다. 설사 술을 잘 못하더라도 동석해 일에 대한 고민을공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권 부장:예전에는 많이 먹었는데 요즘은 건강이 안좋아 잘못한다.주로 점심을 이용해 부원들과 문제를 푼다.

■후배 여기자들을 바라보는 눈은.

▲김 국장:여자후배와 함께 일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연예부장으로 있을 때는 (다른팀에서 기피하면) 내 밑으로 다 불러서 쓰곤했다.앞으로도 남녀 구별없이 동등하게 기회를 주겠다.

▲권 부장:같은 여자이기에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눈에잘 띄는 것 같다.달리기시합에서 한참 뒤쳐져 있으면서 따라잡으려는 노력도 않는 여자 후배를 보면 안타깝다.

■직장에서 수적으로 소수인 여성들이 오히려 여성들과의생활에서 자주 어려움을 겪는데.

▲권 부장:남성과 동등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만심에 자신들이 여성문제와 상관없다는 착각을 하는 것 같다.한 개인만 뛰어나면 된다는 생각은 틀린 것이다.여성의 지위를 올리려면 함께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김 국장: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은 남자들이 흘린 마타도어(흑색선전)이다.흔들리지 말라(웃음).

■우리나라 여성취업환경에 대해.

▲권 부장: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기본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대졸여성의 사회참여율,의사결정집단의 참가율이 선진국보다 한참 뒤떨어졌다.여성활용장치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

▲김 국장:나는 권선배처럼 애까지 딸렸으면 아마 이자리에못왔을거다.남녀가 함께 벌어야만 살 수 있는 사회적 환경에서 여성 취업 인프라는 부족하다.

■남성적인 언론사 문화에 너무 순응한 것은 아닌가.

▲권 부장:조직에 잘 적응하는 것도 문화를 바꿔나가는 방법중 하나다.적응도 못하고 외톨이가 되면 발휘할 힘이 없다.

가부장 사회에 맞서 싸우는 데는 여러가지 전투방식이 있다.전면전,우회전,각개전 등등….

1시간30분에 걸친 인터뷰동안 두 사람은 조직에 대한 책임감과 유연한 대응능력을 강조했다.그들은 ‘성공한’ 여기자라는 점에서는 같았으나 다른 점도 눈에 띄었다.권부장은차분한 스타일인 반면,김 국장은 여걸형이었다.

한편 장명수 사장은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언론사 ‘여풍’은 아직 멀었다”고 잘라 말했다.여기자들의 수가 최근 많아졌다고 하지만 남성중심의 보도논조와 시각을 변화시키려면 여기자가 전체기자의 30%정도는 차지해야한다는지적이다.

장 사장은 또 “여성직장인들의 육아문제 등은 사회적 차원에서 배려해야 한다”면서,힘들어하는 여성직장인들에게“인생은 결국장거리 경주다.직업에 대한 진지한 자세로죽어라 뛰다보면 언젠가 눈에 띈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 프로필.

▲권태선부장은 78년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업후 한국일보입사,80년 해직뒤 김&장 법률사무소를 거쳐 88년 한겨레에입사했다.파리 특파원,국제부장을 지냈다.

▲김경희국장은 80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후 한국일보 입사,일간스포츠 연예부,한국일보 문화부,일간스포츠 연예부장 등을 지냈다.

허윤주기자 rara@
2001-09-2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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