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40대남자의 눈물

[대한광장] 40대남자의 눈물

성전 기자 기자
입력 2001-09-15 00:00
수정 2001-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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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밤은 모든 것이 너무 선명하다.풀섶에서 들려오는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그렇고,높은 하늘에 떠 있는 별이 또한그렇다.눈을 감지만 어둠은 쉬이 눈가를 덮지 못한다.감은눈 사이로 별의 선명한 빛살과 벌레들의 서럽도록 투명한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고 밀려와 나를 거울처럼 비춘다.

가을 밤에는 자신을 숨길 수가 없다.모든 허세와 위선도 가을 밤 앞에서는 부질없는 짓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살지 못한 사람들은 가을 밤에는 모두가 외롭다.그 외로움이 문득 삶의 의미를 묻게 한다.일상과 허세에 가렸던 삶의 진실이 외로움으로 선명히 드러날 때 누구나 갑자기 자신이 낯설어진다.늘상 보아왔고,언제나 느껴왔던 내가 자신이 아닌 것만 같은 생각이 들 때 저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공허한 울림은 존재의 의미를 묻는 화두가 된다.

나는 내 자신에게 묻는다.얼마나 순결한 삶을 살아 왔느냐고.그 물음 앞에서 나는 커다란 외로움을 만난다.나는 명확한 물음 앞에서 대답을 할 수가 없다.부끄럽다.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진리의 길을 걷는종교인으로서 그 물음 앞에서나는 한없이 부끄럽다.내가 걸어온 길과 세월들은 내게 아무런 대답도 건네지 못한다.그것은 무력할 뿐이다.내가 올리는 매일의 기도와 참회 속에서도 나는 진실하지 못했던 것이다.삶의 내용이 되지 못한 기도와 참회는 이 밤 나를 더욱더외롭게 한다.

얼마 전 나는 40대 남자의 눈물을 보았다.늦은 밤에 찾아와 울먹이며 되뇌이는 그의 고백을 들으며 삶은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그 의미를 반드시 묻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실패한 사회인이었다.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모험을 강행했다.하지만 세상은 그의모험에 답하지 않았다.그는 번번이 실패했고 주변의 사람들은 하나 둘 그를 떠나기 시작했다.사람들이 떠나고 나서야그는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텅 빈 자리에서 마주보는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하고 유약했다.한때 그렇게 가슴 속에 넘치던 소유욕도 모두 부질없이만 보였다.

그는 외로웠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만 싶었다.그러나 그의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그는 돌아가신 아버지가한없이 그리웠다.아버지가 계셨다면 마음의 커다란 위로를 얻을 것만같았다.부재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마침내 그의 눈에 눈물이 되어 흘렀다.

40대 남자의 눈물 앞에서 나는 그 눈물이 정말 참회의 눈물이기를 바랐다.헛된 욕망과 기대를 지우고 가난하지만 투명한 삶의 자리를 닦는 눈물이기를 기대했다.더이상 욕망 속에서 시행착오를 하지 않고,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며 작은 것에 만족하는 소욕지족의 눈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잃고서야 비로소 삶의 질문과 만난 것이다.

그의 대답은 눈물이었다.40여년의 세월이 그에게 남긴 대답은 눈물뿐이었다.그것은 그의 삶이 진실을 잃고 배회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두려움과 유약함의 눈물.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눈물은 삶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다.

그가 돌아가고 나서 나는 어떠한 대답을 갖고 있는가 돌아보았다.아직은 아무런 대답도 갖고 있지 않다.문득 만나는삶의 질문 앞에서 나도 역시 침묵할 뿐이다.그러나 불안하고 유약한 눈물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살아가는 것은 삶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긴 여정이다.

그것은 진실한 삶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지금 비록 답은 없지만 명쾌한 답을 찾으리라는 희망은 있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가야겠다.그리고 인생은 언제나 과정이라는 것을 깨우치며 좀더 느리고 더디게 살아가야겠다.

그러면 어느 날,해답은 맑은 별처럼 내게 오리라.

▲성 전 옥천암 주지
2001-09-1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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