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선언] 고정관념의 벽이 문제다

[여성 선언] 고정관념의 벽이 문제다

이정숙 기자 기자
입력 2001-09-10 00:00
수정 2001-09-10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나에게 개인적으로 스피치 훈련을 받은 적이 있는 한 기업인이 전화를 해왔다.“딸이 방송국의 아나운서 입사시험을 보겠다고 합니다.요즘에는 방송국 입사 시험 보는데 기혼·미혼 안가리지요? 우리 딸애가 얼마 전에 결혼을 해서…” 내가 근무하던 시절에는 ‘아나운서는 미혼’이 공식처럼 되어 있어서 나는 서슴없이 “기혼 여성에게는 응시자격을 주지 않을걸요?”라고 답변했다.

알고 보니 지금은 여자 아나운서 응시자격에 기혼과 미혼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어차피 입사하면 곧바로 결혼을 하며,결혼 후에도 그만두지 않는데 굳이 미혼에게만 입사자격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나는 그 분에게 다시 전화를 해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부끄러웠다.소위 앞서가는 여성으로 스스로를 분류하던 나도 여사원의 신입사원 입사는 미혼으로 국한되어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예 여성에게는 응시자격조차 주지 않던 시절에도 당당하게 인사과를 찾아가 여성에게 응시자격조차 주지 않는것은 불법이라고 큰소리 친 후 입사시험을 치르고 합격해방송인이 된 여성도 있다.

남성 중심의 전문직으로 여겨지던 법조계와 의료계는 물론 남성 고유의 업무로 여겨지던 중장비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나날이 늘고 있다.고정관념을 깨고 나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여성들이 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사석에서 만난 386세대의 잘 나가는 한 남성 벤처 CEO는 “저는 절대 여사원을 위해 투자하지 않겠습니다.교육비 투자해서 쓸만한 전문가 만들면 해외 근무 떠나는 남편 따라 미국을 가느니,애 낳고 몇 년간은 쉬어야 한다느니 하면서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고 사표를 내니 어떻게안심하고 전문가로 키우겠습니까? 그런 일을 당하고도 설마 하며 다시 여성을 채용했다가 낭패본 일이 한두 번이아닙니다.” 나 또한 여사원을 채용해 그 남자 CEO처럼 실망한 경험이 많은 터여서 당당하게 대응할 입장은 못되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여성은 사회적 책임을 가볍게 여겨도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프로가 되지 못하는 여성들이 많다.결근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회사에결근할 수밖에없는 사유를 알리지 않고도 제 때 연락하지 않아 미안하다는 말 대신 남의 사정도 모르고 야단만 치다니 야속하다며 되레 화를 내거나 기대했던 업무가 주어지지 않았다며 신입사원 교육만 받고 즉각 그만두면서 조금도 미안해하지않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사회활동을 하고 싶어하지만 일자리가없다는 보도를 심심치않게 본다.같은 일에 종사해도 여성은 남성의 61%의 급여를 받는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이러한 사실을 보면서 화만 낼 것이 아니라 과연 여성들이‘여성은 직장에서 차별을 받을 것이다’ ‘여성에게는 전문직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사회적 책임에 소홀한 점은 없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불평등의 장벽을 넘으려면 여성 자신이 여성의 한계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있게 대항할 만한 프로 정신과 태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정숙 시그니아 미디어 대표
2001-09-10 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