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너 군에 가라고 신체검사 통지서가 나왔다.” 대학교 일학년 여름 여자인 내게 신체검사 통지서가 나왔다고 집안이 발칵 뒤집혀졌다.‘정일태’라는 남자이름 탓이었다.웃어야할 지 울어야할 지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엄마와 나는 한참을 서로 쳐다봤다.이런 에피소드는 한두가지가 아니었다.결혼식때에는 신부가 정일태가 맞느냐는 확인전화가 쇄도했다.신혼시절에도 우리는 호칭에 있어 아주 불편했다.이름 부르며 무드 잡기는 아예 글렀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어른들 앞에서의 호칭도 어색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데이트 할 때도 남편은 내 이름을 잘부르지 않았던 것 같다.물론 지금도 내 이름을 잘 부르지않는다.업무상의 이유로 나를 찾는 사람들도 몇번이나 정일태씨가 맞느냐고 물어보곤했다.
‘정일태’.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불려진 나의 호적상이름이다.그전까지는 집에서 ‘은주'로 통했었다. 우리 집은딸 넷에 아들 셋,4녀 3남이다. 그 중 나는 넷째 딸이다.경주 정씨 집안 장손인 아버지 입장에선 넷째 딸로 태어난 내가 예뻐 보일 리 없었다.아들 손자를 바라셨던 할아버지는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름 먼저 지어놓고 나를 기다리셨다.그런데 이러한 바램도 아랑 곳 없이 넷째 딸을 보게된 아버지는 작은 이불보에 담긴 나를 저 만큼,아니 더 자세히말하면 웃목 책상 밑으로 밀어 넣으시곤 담배를 꺼내 물고한숨만 푹푹 내 쉬셨다고 한다.
장손이신 아버지는 딸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붙여주면 동생으로 아들을 볼 수 있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을 듣고 호적에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한일 자에 클태(一泰)라는 큰 이름을 그대로 올리셨다.그리고 정확히 3년 후 난 남동생을 보았고 이름 덕을 얼마나 톡톡히 봤는지 그후 남동생을 셋이나 둔 누나가 되었다.
사회 생활을 할때에는 남자 이름이 편했다.“정 형!”.사무실에서 같은 업무를 하고 있는 팀장이 바쁠 때 부르기도하는 나의 호칭이다.또한 남자 후배가 “일태 성(형)!”하고 부르기도 한다.난 “정 형”이나 “일태 성(형)”이라는호칭으로 불리는 게 싫지가 않다.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깨우쳤던 이름과 성격과의 상관관계.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적을 두고 부터는 아예 ‘은주’란 이름을 잊고 살았다.사회는 씩씩함과 용감함 그리고 적극성과 과감성을 나에게 요구했고 그에 성실히 부응해 나가다보니 이젠 ‘일태’라는 이름 외에 나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없다고 느껴진다..
아버지는 넷째 딸 이름 덕에 아들 셋을 얻으셨다며 만족해 하신다.그리고 지금은 아들이 넷 이라며 자랑하고 다니신다.애교 많은 딸로서 보다는 집안 대소사를 깔끔히 처리하는 아들로서의 몫을 당당히 하고있는 나이기에.
정일태 KBS 홍보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데이트 할 때도 남편은 내 이름을 잘부르지 않았던 것 같다.물론 지금도 내 이름을 잘 부르지않는다.업무상의 이유로 나를 찾는 사람들도 몇번이나 정일태씨가 맞느냐고 물어보곤했다.
‘정일태’.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불려진 나의 호적상이름이다.그전까지는 집에서 ‘은주'로 통했었다. 우리 집은딸 넷에 아들 셋,4녀 3남이다. 그 중 나는 넷째 딸이다.경주 정씨 집안 장손인 아버지 입장에선 넷째 딸로 태어난 내가 예뻐 보일 리 없었다.아들 손자를 바라셨던 할아버지는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름 먼저 지어놓고 나를 기다리셨다.그런데 이러한 바램도 아랑 곳 없이 넷째 딸을 보게된 아버지는 작은 이불보에 담긴 나를 저 만큼,아니 더 자세히말하면 웃목 책상 밑으로 밀어 넣으시곤 담배를 꺼내 물고한숨만 푹푹 내 쉬셨다고 한다.
장손이신 아버지는 딸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붙여주면 동생으로 아들을 볼 수 있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을 듣고 호적에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한일 자에 클태(一泰)라는 큰 이름을 그대로 올리셨다.그리고 정확히 3년 후 난 남동생을 보았고 이름 덕을 얼마나 톡톡히 봤는지 그후 남동생을 셋이나 둔 누나가 되었다.
사회 생활을 할때에는 남자 이름이 편했다.“정 형!”.사무실에서 같은 업무를 하고 있는 팀장이 바쁠 때 부르기도하는 나의 호칭이다.또한 남자 후배가 “일태 성(형)!”하고 부르기도 한다.난 “정 형”이나 “일태 성(형)”이라는호칭으로 불리는 게 싫지가 않다.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깨우쳤던 이름과 성격과의 상관관계.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적을 두고 부터는 아예 ‘은주’란 이름을 잊고 살았다.사회는 씩씩함과 용감함 그리고 적극성과 과감성을 나에게 요구했고 그에 성실히 부응해 나가다보니 이젠 ‘일태’라는 이름 외에 나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없다고 느껴진다..
아버지는 넷째 딸 이름 덕에 아들 셋을 얻으셨다며 만족해 하신다.그리고 지금은 아들이 넷 이라며 자랑하고 다니신다.애교 많은 딸로서 보다는 집안 대소사를 깔끔히 처리하는 아들로서의 몫을 당당히 하고있는 나이기에.
정일태 KBS 홍보실
2001-05-2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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