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선언] 여자의 몸은 누구의 것인가

[여성 선언] 여자의 몸은 누구의 것인가

정은숙 기자 기자
입력 2001-05-14 00:00
수정 2001-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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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광고를 통해 처음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미국에서 큰 화제를 모은 책이 드디어 나왔구나 하는 찬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반응일까 하는 다소 회의적인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책이란것이 결국 그 국민들의 문화적인 역량과 토양을 기반으로하여 꽃피우는 것이므로 어떤 단순한 공간적인 이식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생각까지가 그 속에는 포함되어 있었다.

근원적으로는 남녀의 성차가 온전히 한 인간이 자신의 발로서서 삶을 꾸려나가는 문제에 있어 무슨 층위를 발생시키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의 어려움을 떠올려볼 때 그리 간단한 도식만으로는 사정을 잘 이해하기 어렵다. 가령 사춘기 이전부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달리 키워진다. 이런 학습 효과들이 쌓여 여자아이는어느 순간 뒤편에서 후발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가령‘버자이너 모놀로그’식으로 말한다면 남성의 성기를 입에올리면 욕이라도 되지만, 여성의 성기를 입에 올리면 분위기가 아주 기묘해진다.

여성의 몸은 이처럼 여전히 베일에 쌓여 있는 것이다.의학적인 경지,생리학적인 경지에서가 아니라 문화적,관습적인차원에서 여성의 몸은 여전히 잘 알 수 없고 또 입에 올려서도 안되는 그 무엇이다.

물론 이 책이 미국내에서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간의 사회적 금기 요소였다고 할 여성 성기에 관한 이야기를 공론화했다는 점에 그 일차적인 원인이 있지만 소외되고죄악시되던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데 더 큰 원인이 있을 듯하다.이 책의 작가 이브 엔슬러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약 200명의 여성들과 인터뷰를했다고 한다.그들 중에는 나이 든 여성은 물론이고 기혼여성,독신여성,레즈비언,대학교수,배우,커리어우먼,섹스상담가,흑인여성,남미여성,아시아여성,인디언여성,백인여성,유태계여성 등 실로 다양하고 다채로운 여성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여성의 몸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여성의 몸은 누구에소속되어 있는가? 이는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이 단순한 질문은 우문이 아니라 심오한 물음이다.특히한국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자신의 몸을 소모해 가족들의 삶을 부양하는 것을 생의 목적으로 알고 살아왔다.최근 어느여성지에서 공모한 장편소설 모집에서 당선한 ‘불온한 날씨’라는 소설은 여성의 몸에 대한 너무나 당연한 메시지를던져주고 있다. 어느 평론가는 이 소설을 읽고 “남성들이여,착각하지 마라. 여성의 몸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라 바로여성의 것이다”라고 다소 희화적으로 적었지만 과연 오늘날 여성의 몸의 주인은 서서히 바뀌고 있는 듯하다. 여성의자기 선언은 바로 몸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성,남성의 편가름이 그것만으로 무슨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는 없다.자신이 남의 노예라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몸 또한 남의 것이라고 느낄 것이다.여성은 진정 자신의몸,자신의 영혼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삶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니까.여성의 몸에 대한 도발이단지 도발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는 메시지를 던져주기를 바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은숙 시인
2001-05-1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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