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안의 국립민속박물관은 속리산 법주사의 팔상전을 본따 만들었다고 한다.건물의 본격적인 쓰임새는 기단에 해당하는 3층에 머문다.1층은 전시공간,2∼3층은 연구 및 행정실이다.팔상전에 해당되는 부분은 4층의 40∼50평 남짓한공간으로 그동안 별다른 쓸모가 없었다.
4층에 가려면 3층 자료실 한켠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현기증이 날 정도로 가파른 소라형태의 철제계단을 올라야 한다.이곳에서 고개를 들면 8층 꼭대기까지 거칠 것 없이 뚫려있다.
이 방은 지금 1만6,500여권의 책과 3,500여점의 영상 및 사진자료로 꽉 차있다.지난해 11월 56살로 숨진 장철수(張哲秀)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교수가 세상에 남긴 ‘선물’이다.장교수가 숨진 뒤 부인 안만훈(安萬勳)씨가 한동안 “외상 책값을 갚으라”는 독촉전화에 시달렸다는 얘기가 실감날 만한 분량이다.
장교수의 자료를 기증받은 민속박물관은 적지않은 흥분에싸여 있다.그도 그럴 것이 기존에 민속박물관이 갖고 있는자료보다 훨씬 충실하기 때문이다.자료실의 장서는 1만9,000여권.그러나 속된말로 ‘영양가’는 장교수의 자료에 못미친다.자료구입비의 부족 때문이지만 박물관측은 “지난 30년 동안 모은 책이 한 사람 것 만도 못하다”며 다소 허탈한 표정이다.
고인은 서울대학에서 국문학과 고고인류학을,대학원에선 인류학을,독일 튀빙겐 대학 유학시절엔 민속학을 전공했다.그만큼 장서의 폭이 넓다.특히 유학 시절 지속적으로 수집한4,500여권의 독일 및 서구 서적들은 ‘한국 최고의 서구 민속학 라이브러리’라는 평가를 받는다.국내 민속학자들은그동안 관계서적을 보려면 독일문화원을 찾았으나 앞으로는 민속박물관에서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인의 장서를 정리하고 있는 박물관 관계자들은 “생각 보다 훨씬 순도가 높아 놀랐다”고 입을 모은다.학자의 시각에서 정선한 서적과 문외한이 그저 ‘수집’한 책은 질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깨닫고 있다.
고인은 민속박물관 연구원을 거쳐 온양민속박물관 학예과장과 안동대 민속과교수로 재직했다.따라서 자료들을 안동대나 정신문화연구원에 기증하는 방안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진다.그러나 불과 1년도 안되는 기간,그것도 임시직으로근무했던 민속박물관에 기증한 데는 좀 더 널리 활용됐으면 좋겠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민속박물관도 고인의 뜻에 따라 자료정리가 이루어지는 대로 그동안 창고로 쓰이던 4층을 아예 ‘장철수 문고’로 개조하는 한편 5층은 열람실로 꾸며 일정자격을 갖춘 연구자들에게 개방할 계획이다.외양만 번듯하다는 지적을 받아오던 ‘팔상전’이 비로소 제역할을 찾게 된 셈이다.
이종철(李鍾哲) 민속박물관장은 “고인이 남긴 학문적 업적도 크지만,애써 모은 자료들을 후학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선뜻 기증한 점은 모든 학자들의 귀감”이라면서 “문화재나 연구의 기반이 되는 각종 자료들을 박물관이나 도서관등에 기증하여 세상과 공유하는 운동이 활발해지는 계기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4층에 가려면 3층 자료실 한켠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현기증이 날 정도로 가파른 소라형태의 철제계단을 올라야 한다.이곳에서 고개를 들면 8층 꼭대기까지 거칠 것 없이 뚫려있다.
이 방은 지금 1만6,500여권의 책과 3,500여점의 영상 및 사진자료로 꽉 차있다.지난해 11월 56살로 숨진 장철수(張哲秀)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교수가 세상에 남긴 ‘선물’이다.장교수가 숨진 뒤 부인 안만훈(安萬勳)씨가 한동안 “외상 책값을 갚으라”는 독촉전화에 시달렸다는 얘기가 실감날 만한 분량이다.
장교수의 자료를 기증받은 민속박물관은 적지않은 흥분에싸여 있다.그도 그럴 것이 기존에 민속박물관이 갖고 있는자료보다 훨씬 충실하기 때문이다.자료실의 장서는 1만9,000여권.그러나 속된말로 ‘영양가’는 장교수의 자료에 못미친다.자료구입비의 부족 때문이지만 박물관측은 “지난 30년 동안 모은 책이 한 사람 것 만도 못하다”며 다소 허탈한 표정이다.
고인은 서울대학에서 국문학과 고고인류학을,대학원에선 인류학을,독일 튀빙겐 대학 유학시절엔 민속학을 전공했다.그만큼 장서의 폭이 넓다.특히 유학 시절 지속적으로 수집한4,500여권의 독일 및 서구 서적들은 ‘한국 최고의 서구 민속학 라이브러리’라는 평가를 받는다.국내 민속학자들은그동안 관계서적을 보려면 독일문화원을 찾았으나 앞으로는 민속박물관에서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인의 장서를 정리하고 있는 박물관 관계자들은 “생각 보다 훨씬 순도가 높아 놀랐다”고 입을 모은다.학자의 시각에서 정선한 서적과 문외한이 그저 ‘수집’한 책은 질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깨닫고 있다.
고인은 민속박물관 연구원을 거쳐 온양민속박물관 학예과장과 안동대 민속과교수로 재직했다.따라서 자료들을 안동대나 정신문화연구원에 기증하는 방안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진다.그러나 불과 1년도 안되는 기간,그것도 임시직으로근무했던 민속박물관에 기증한 데는 좀 더 널리 활용됐으면 좋겠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민속박물관도 고인의 뜻에 따라 자료정리가 이루어지는 대로 그동안 창고로 쓰이던 4층을 아예 ‘장철수 문고’로 개조하는 한편 5층은 열람실로 꾸며 일정자격을 갖춘 연구자들에게 개방할 계획이다.외양만 번듯하다는 지적을 받아오던 ‘팔상전’이 비로소 제역할을 찾게 된 셈이다.
이종철(李鍾哲) 민속박물관장은 “고인이 남긴 학문적 업적도 크지만,애써 모은 자료들을 후학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선뜻 기증한 점은 모든 학자들의 귀감”이라면서 “문화재나 연구의 기반이 되는 각종 자료들을 박물관이나 도서관등에 기증하여 세상과 공유하는 운동이 활발해지는 계기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2001-04-2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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