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포럼] 홀대받는 우리말 우리역사

[대한포럼] 홀대받는 우리말 우리역사

이용원 기자 기자
입력 2001-04-25 00:00
수정 2001-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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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생 네명이 칠판에 편지를 ‘부치다’라는단어를 받아쓰는데 맞게 쓰는 학생이 없다.기분이 ‘언짢다’는 말을 쓰랬더니 ‘언짠다’‘언짠타’‘얹잔다’로 갖가지다.

㉯어린이 351명에게 “신라 김유신장군과 일본만화 주인공디지몬이 싸울 때 누가 이기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320명(91.2%)이 디지몬의 손을 들어주었고 김유신을 원한 어린이는 31명이었다.

㉮는 지난 18일 방영된 TV뉴스의 한 장면이다.수도권 중학교에서 1학년 담임교사가 아이들의 맞춤법 수준에 놀라 매일 다섯문제씩 받아쓰기 시험을 치는데,만점은 한두명이고한두 문제 맞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우리글을 6년 넘게 배운 중학생이 철자법도 모른다고 나무라고 끝낼 일인가.

㉯는 다음날인 19일자 일부 신문에 보도된 내용이다.울산의 어린이극단이,‘김유신과 디지몬이 대결해 김장군이 일본의 왜곡된 문화상품인 디지몬을 몰아낸다’는 줄거리의인형극을 기획했다.극단이 공연에 앞서 아이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자 결과가 그처럼 나왔다.극단대표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관련해 우리 역사의 우월함을 알리고자 했는데…”라며 당황했다고 한다.

위의 두가지 삽화를 보고 놀랐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사실 그는 우리 것을 그다지 사랑하는 이가 아니다.우리말글(국어)과 우리역사(국사)는 오래 전부터 홀대받아 왔고그 결과가 이제 불쑥불쑥 드러난다는,그 사실을 모르고 지냈다는 ‘자백’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 말글 홀대는 여러가지로 입증된다.최근 서울대는 신입생을 비롯한 재학생의 국어 수준이 대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할 만큼 낮다는 사실을 확인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또래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다는 서울대에서 재학생 국어 실력이 그 정도라면 다른 집단은 언급해 무엇하겠는가.문제는 ‘그 정도’실력만 갖고도 서울대 입학이 가능해진 우리사회의 국어 푸대접에 있다.

대학입시에서만이 아니다.지난주 행정자치부는 7급공무원임용시험에서 필수인 국어과목을 폐지한다는 방침을 공표하고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5급시험(고시)에서는 진즉에 폐지됐으므로 7급시험에서까지 국어과목이 없어지면 간부 공무원 채용에서 국어능력 평가는 아예 사라지게 된다.

국사 쪽을 보아도 나을 게 없다. 초등학교 입학에서 고교졸업까지 12년 동안 국사 시간은 300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고교 2년 때 배우는 근현대사는 12가지 선택과목 가운데 하나여서 실제 학생들이 우리역사를 배우는 양은 너무적다. 대학에서 교양국사가 필수과목에서 선택으로 바뀐 지는 10년이 넘었고 각종 국가시험에서도 국사는 오래 전에빠졌다.

교육의 주목적 가운데 하나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키우는 일이다.우리 말글과 역사가 진학·취업에 도움되지않는 실정에서 학생·취업희망자가 관심 갖기를 바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자라나는 세대가 우리 말글·역사를 알고 애정을 갖기 원한다면 사회가 해줄 일은 간단하다.우리 것에 능숙한 사람에게 그만큼 더 이득을 주는 것이다.

말글과 역사는 민족의 정체성·주체성을 버텨주는 두 기둥이다.진부하기조차 한 이 말을 다시 끄집어내는 까닭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우리가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우리는일본의 역사왜곡에 다같이 분노하며 수정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밖을 향해 고함치는 이 순간에도 안에서는 민족정기가 솔솔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모른다.

일본의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이에 따른 우경화가 심상치않게 전개되는 시기다.일부에서는 나라를 빼앗긴 20세기 초의 역사상황을 떠올리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그같은일이 또 발생할 리야 물론 없을 것이다.그렇더라도 우리는말글·역사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부흥시켜 우리사회 내부를단단히 다져나가야 한다. 제 나라 말과 역사를 업신여기는민족은 살아남지 못한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2001-04-2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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