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자두나무 아래에서는…

[대한광장] 자두나무 아래에서는…

이덕일 기자 기자
입력 2001-01-11 00:00
수정 2001-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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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란 말이 있다.자두나무 아래서는 관을 고쳐 매지 말라는 뜻으로서 행여 오해살 행위 자체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자루채 자두를 가득 따간 사람들과,자신이 먹은 자두가 훔친 것인 줄 몰랐다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럽다.그들 중 일부는아직도 그 자두를 가지고 있다니 가관이다.더욱 가관인 것은 바로 그자루가 드러남으로써 범인임이 밝혀진 인물이 ‘야당탄압’이니 ‘정계개편 음모’니 하는 말로 자루 속에 든 자두의 본질을 희석하려는 점이다.

IMF시절 어느 술좌석에서 한 대통령이 나라를 망쳤다고 지탄받을 때필자는 “재임 중 한 푼의 돈도 받지 않았다”는 그분의 말을 빌려변호했다가 “그 말을 사실로 믿느냐”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필자의 순진함을 핀잔한 그분들이 교육이라고는 의무교육밖에 받지 못한 분들이기에 필자는 식자(識者)의 입장에서 이 나라에 가득 찬 불신을 우려했다.그러나 기업인으로부터 돈을 받는 행위를 뛰어넘어 국가예산,그것도 국가안전에 관련된 옛 안기부 예산을 선거자금으로사용했다는 보도는,배우지 못한 그 분들이 이 나라 정치의 본질을 체감하는 데에는 필자보다 백배는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

옛날 박정희정권이 구악을 일소하겠다고 나섰다가 곧 ‘구악이 신악을 뺨친다’는 비아냥으로 되돌아왔던 것보다 더한 역사의 전철이,이른바 문민정부 시절에 저질러졌다는 점은 분노를 넘어 이 역사에 절망을 느끼게 한다.그리고 이런 행위를 온갖 궤변으로 호도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이들이 대한민국을 다스리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온 외계인들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한다.

지금 필자를 비롯한 일반 민초들이 알고 싶은 것은 국민세금이 특정정당의 선거자금으로 지원되었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실패한 전직대통령을 옹호할 때 나를 순진하다고 핀잔주었던 사람들처럼 이런 말을 하는 필자를 “정치를 너무 모른다”고 핀잔주면서 ‘정계개편 음모’니 뭐니 할지 모르지만 이 나라의 한 상식인으로서 필자가 알고싶은 것은 외계인들이 벌이는 고도의 정치게임이 아니라 진실일 뿐이며,그 진실에 따라 법의 정의를 세우는 일뿐이다.

이 나라는 자루채 자두를 훔친 외계인들이 온갖 궤변으로 도둑질을변명해도 좋을만큼 만만한 과정을 거쳐 건국된 나라가 아니다.경남밀양 출신의 최수봉(崔壽鳳:1894∼1921)이란 독립운동가가 있다.의열단원인 그는 26세 때인 1920년 12월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가체포되어 사형 당한 분이다. 투탄으로 아무도 다치지 않았음에도 그를 사형시킬 정도로 악독한 일제를 향해,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내던진 이런 선열들의 무수한 목숨의 대가로 세운 나라가 이 나라이다.

더구나 그 궤변의 옛 여당 사무총장은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다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로 바다에 떠올라 온 국민을 궐기케만든 김주열열사의 고장 출신 국회의원이다.김주열열사의,부정선거규탄의 부릅뜬 눈을 기억한다면 감히 건국 이래 초유의 선거부정을‘야당탄압’‘정계개편 음모’운운하는 외계인의 수사(修辭)로 빠져나가려 하지는 못할 것이다.

검찰에게는 이 사건 수사를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시금석으로 삼아야 할 책임이 있다.조선시대 검찰 격인 사헌부 관리들은 조회가 끝난 후 다른 관료들이 다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다른 관료들과 뒤섞여나가는 자체가 수사의 엄정함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간 정치검찰이란 질타를 받은 검찰은 국기문란 그 자체인 이 사건에서는 어떠한 정치적 배려도 없이 철저히 수사함으로써 국민 신뢰를회복하기를 바란다. 하긴 벌써부터 누구누구는 수사대상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런 기대가 부질없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이덕일 역사평론가
2001-01-11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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