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각서 본 태평양전쟁사 ‘헨더슨 비행장’

우리시각서 본 태평양전쟁사 ‘헨더슨 비행장’

입력 2001-01-10 00:00
수정 2001-01-10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태평양전쟁의 주역은 일본과 미국이었다.그러나 우리도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징용노무자와 종군위안부를 제외하고도 한국의 젊은이 38만명이 그 전쟁에 끌려가 그중 15만명이 전사했다는 게 패전 후 일본정부의 발표였다.

‘헨더슨 비행장’(지식산업사 펴냄)은 남의 일이 아니었던 태평양전쟁의 해전사(海戰史)를 우리 눈으로 객관적으로 살펴본 책이다.저자는 이건산업의 솔로몬군도 현지법인 대표 권주혁씨.진주만 공격으로기세를 올리던 일본 해군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최초로 미 해군에 패한 2개월 후인 1942년 8월부터 6개월동안 남태평양 솔로몬군도의 한섬 과달카날에서 작은 헨더슨비행장을 둘러싸고 벌어진 치열한 전투를 중심으로 기록했다.헨더슨 소령은 몸바친 기습비행 공격으로 일본군 미드웨이 2차공격대의 발진을 늦춰 전쟁의 승패가 뒤바뀌는 단초를 마련한 인물.

군사전문가도 역사학자도 아닌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중학교때 학생용 잡지에서 읽은 ‘피비린내 나는 과달카날 전투’라는 글.

그는 커서 꼭 한번 찾아보겠다고 마음먹었고,취업 후 현지에 파견돼꿈을 실현했다.그로부터 20년동안 미국·일본 자료 100여종을 샅샅이수집하고 관련 현장을 빠짐없이 찾아다니며 수십명의 현지인을 인터뷰한 성과물을 이 책에 담았다. 지구촌 곳곳에서 찍은 수백장의 현장사진을 곁들였다.콰이강의 다리가 영화와 달리 미 공군 폭격기에 의해 파괴됐다는 등 꼼꼼한 지적도 많다.

저자는 병력과 장비면에서 월등했던 일본의 패배 원인을 진주만 기습때 유류저장시설이나 함선수리시설을 공격하지 않고 퇴각한 점 등 일본군 지휘관의 어리석은 판단과 날씨에서 찾는다.아울러 당시 일본정부에 의해 먼 남방전쟁 터까지 노무자로 강제 징용돼 와 한줌의 흙이돼버린 우리 동포들의 신상이라도 파악하려는 정부의 노력 부족을 아쉬워한다.

김주혁기자 jhkm@
2001-01-10 1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결혼식 생략? '노웨딩'에 대한 여러분 생각은?
비용 문제 등으로 결혼식을 생략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노웨딩에 대한 여러분은 생각은?
1. 결혼식 굳이 안해도 된다.
2. 결혼식 꼭 해야 한다.
-->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