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시론] 재벌과 정치

[대한시론] 재벌과 정치

한상범 기자 기자
입력 2000-12-25 00:00
수정 2000-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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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의 최대 문제는 무엇인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부패이다.부패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정경유착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정경유착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반세기동안 재벌,그와 야합한 정상배,일부 관료 등 3두마차가 이끈독재의 산물이다.

그런데 여기서 박정희시대와 그후에 재벌의 자세가 아주 달라지는점을 주목하게 된다.박정희정권에선 글자 그대로 박정희란 최고권력자가 재벌에게 호통을 쳤다.그런데 박정희 피살후 신군부가 등장하고는 재벌이 점차로 정치를 넘보고 리모트 콘트롤하는 세태가 되었다.

마침내 1990년대 어느 재벌 총수는 “기업은 일류인데 정치는 삼류이하”라고 망발하며 건방을 떨었다.

재벌 총수가 이 정도로 큰소리 치게 된 배경은 일년 걸러 하게 되는 선거,국회의원선거-대통령선거-지방의회의원선거-지방자치단체장선거로 각 정당과 정치인이 재벌의 뒷문고객으로 전락해 그 총수 앞에서 머리를 들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신군부가 87년 6·10시민항쟁에 양보해 개헌하면서 공직선거를 토막치기 식으로 떼어 실시해위험부담을 분산한 전략전술로 말미암아 법제도가 기형적으로 조각난 것이다.이러한 낭비구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치고남을만도 한데,아직도 바보놀이는 지속된다.

정치·경제상 모순구조의 문제점은 내외의 비판자가 지적하듯이 정경유착-재벌 특혜와 시장독점,그를 비호하는 반민주적 관치(官治)독재-에 있었다.이미 영어로 ‘재벌’이란 단어가 고유명사가 되었듯이 한국에서 재벌은 독특한 권력유착 수법으로 지칠줄 모르고 확장해나가는 거대한 괴물이 되었다.IMF관리이전 재벌의 황금시기인 1994년 한국의 GDP(국내총생산)가 305조원,정부 일반회계 예산이 43조원일당시 6대 재벌 매상고가 이미 이 금액을 초과했다.

그런데 재벌의 돈벌이 방식과 기술은 생산이 아니라,주로 유통구조속에서의 특혜융자로 돈을 불리는 것을 비롯해 비생산적 토지매수나투기,국내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등의 수법이었다.이러한 재벌의 행태를 야유하여 재벌이 아니라‘죄벌(罪閥)’이라고 했다(지동욱의‘한국의 족벌·군벌·재벌’에서).

그래서 외환위기 극복과 부패구조 전반의 청산을 위한 개혁은 당연히 재벌 문제로 초점이 모아졌다.김대중정부 출범후 재벌은 이제까지의 위기돌파 기법을 살려서 정부개혁에 ‘발목잡기’와‘시간끌어 김빼기’작전으로 나왔다.한편으론 전경련 자문위원단이라고 해서 키신저부터 일본의 군벌 우익인 세지마 류조까지 동원하면서 울타리를 치기도 했다.국내정치에서는 야당을 유력한 동맹군으로 활용하고 수구우익의 후견역도 적당히 하면서 막후실력자에서 정치의 정면으로 얼굴을 내보이게 되었다.

이러한 재벌의 위세에 언론계나 학계 또는 어떤 지식인도 감히 불경죄의 발언을 삼가고 있다.노태우정권 당시 전두환에 대한 국회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참고인과 증인으로 나온 재벌총수들에게 쩔쩔매며 아첨하던 추악한 꼴이 그대로 정치인의 모습이고 언론인과 학자들의 대개 모습이라고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이런 판국이니 재벌총수나거기에 기생 또는 공생하는 부류는 한편 불안하면서도 느긋하다.재벌총수 자녀의 변칙상속과 불법 재산증식이 자행되어도 매운소리할 언론이나 지식인이 점점 사라져간다.이런 분위기 속에 개혁은 어떻게되나? 지금 개혁 드라이브가 재벌 편을 드는 정상배와 일부 관료때문에 헛바퀴를 돈다.그러나 이런 상태로 시간을 죽이고 있을 순 없다.정치는 집권투쟁이게 마련이지만,문제는 정치인이라면 자기가 내세우는 정책과 대안에 대해 책임질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국민은 언제이고그러한 정치인에게 책임을 따져야 한다.

무엇보다 정경유착이 초래한 부패구조를 그대로 놓아 두고선 우리가 살아 남을 수 없다.족벌체제 유지를 위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들먹이는 낯간지러운 궤변에 속아서도 안된다.그러한 기만 발언에 대해선 그 정체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물론 부패기득권을 누리는 부류는어느 시대,어느 사회에서고 그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한 적이 없다는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그러면 DJ만을 쳐다보면서 개혁이 안된다고 헛소리를 하면서 시간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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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 범 동국대 교수·헌법학
2000-12-2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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