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웅 칼럼] 언론공작문건과 ‘이중잣대’

[김삼웅 칼럼] 언론공작문건과 ‘이중잣대’

김삼웅 기자 기자
입력 2000-12-19 00:00
수정 2000-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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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괜한 일을 저질렀다.기획위원회가 만든 ‘향후주요업무추진계획’의 다른 부문은 몰라도 문건중 7번째 항목인 ‘언론사 논설집필진 성향파악 및 관리방안’이나 ‘적대적 집필진 비리 등 문제점 자료축적 및 활동방안’ 그리고 ‘우호언론그룹 조직화방안’ 등은 전혀 필요없는 일에 헛수고를 한 것 같다.

언론계로 말할 것 같으면 ‘원폭’과도 같은 엄청난 폭발성을 갖고있는 한나라당 언론문건이 공개된 후 일부 신문의 보도태도를 보면그 이유를 알 것이다.신문들은 ‘통과의례’적으로 보도를 하고 사설을 쓰고는 그만이다.이런 언론계에 ‘적대적 집필진’이 어디 있다고,‘비리 등 문제점’을 찾고 ‘자료축적’의 수고를 한다는 것인가.

지난해 중앙일보 문일현 기자가 당시 이종찬 민주당 부총재에게 보낸 언론문건때를 상기하면 ‘차별성’이 더욱 뚜렷해진다.문기자 사건은 그야말로 기자가 알고 지내는 정치인에게 ‘언론대책’을 제시한 것이고,이번 한나라당 언론문건은 원내 제1당이 차기대선과 관련한 ‘언론공작’을 담은 내용이다.

비중이나 내용이나 죄질로 보아 비교가 되지 않는다.마찬가지로 언론의 보도·논평의 태도 역시 비교가 되지 않는다.우리 언론의 성향(상황)이 이럴진대 무엇 때문에 그런 헛수고를 하는지,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기에다 우연인지 맞불작전인지 적절한 시점에 다시 불거진 청와대총기사건으로 언론은 재빨리 ‘탈출구’를 찾게 되고,익명의 투서한장으로 인해 해묵은 ‘총기사건’이 온통 신문지면을 도배질하게되었다.

‘우호그룹’조직은 몰라도따라서 ‘자연스럽게’ 한나라당 언론공작문건은 묻혀지고 있다.이러한 언론을 두고 ‘성향파악’을 하겠다는 사람들의 ‘수준’이 문제라면 문제다.

만약 문건을 한나라당이 아니고 민주당이나 자민련에서 만들었다고가정해보자.

몇몇 신문사에서는 특별취재팀이 편성되고 문건작성 과정에서부터중간보고라인,총재(대통령)가 사전에 보고받았는지 여부에 이르기까지 기획·분석기사·칼럼·외부필진·만평 그리고 심하면 여론조사를시도하면서 정권 (정당)의 부도덕성과 언론공작에 대한 비민주성을샅샅이 고발하고 성토할 것이다.

뿐만이겠는가.국제언론기관이나 언론단체에 ‘언론탄압’을 고발하는 것은 물론 해외필진까지 동원하여 언론공작행위를 혹독하게 비판할 것이다.또 익명의 여권 소식통을 인용하여 정부여당의 행위를 비난하는 글을 실어서 도덕성에 상처를 낼 것이다.

야당이 굳이 언론사 논설집필진 성향파악을 하지 않아도 언론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터에 무엇 때문에 긁어부스럼을 만든다는 말인가.

그런 시간과 정력을 다른 9가지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대권에 훨씬 가깝게 다가가게 될 것이다.

다만 한가지 필요한 사항이라면 문건의 ‘우호언론그룹 조직화방안’이다.이심전심으로 혹은 학연·지연과 색깔로 충분히 ‘우호’적이고 ‘그룹’이 ‘형성’된 터에 새삼 ‘우호언론그룹’을 조직하고관리할 필요가 있을까만 혹시나 ‘이탈자’가 생길지 모르니 꾸준히관리하기는 해야 할 것이다.또한 ‘적대적 집필진’의 비리나 문제점도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그런 소수 언론인들까지 비리니 보복이니 하면서 협박하여 동색(同色)으로 변하게되면(그럴리도 없겠지만)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금방 들통이 나서 오히려 산통이 깨지게 된다.국민이 그토록 어수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언론공작문건의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그리고 당의 공식기구를 통해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비열한 언론공작 따위를 결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밝혀야 한다.

언론의 각성없이는 이회창 총재는 최근에 조건없는 국회 등원,공적자금 처리 등 대단히전향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국가경제가 어려울 때정파를 초월하여 정부를 돕고 경제회생에 노력하는 상생정치의 모습이 국민에게 좋은모습으로 비치게 된다.

한나라당의 네거티브한 선거전략,특히 언론장악 공작문건보다 이 문제에 대처하는 언론계에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언론의 정도를 크게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언론개혁이 요구되지만 해를넘기도록 진전이 없다. 우리 언론은 3년전(환란때) 외신이 비관론을 펼 때는 낙관론을 주장하더니 지금 외신은 낙관적인데 오히려 비관론을 증폭시켜 경제를 얼어붙게 한다.정녕 한국 언론은 청개구리 습성인가.

김삼웅 주필kimsu@
2000-12-19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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