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견(安堅)은 조선조 초기 산수화풍을 창출한 한국화의 대가로 신라의 솔거(率居),고려시대 이녕(李寧)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화가로 꼽힌다.호는 현동자(玄洞子).세종·문종 연간에 도화원(圖畵院)의 종6품 벼슬인 선화(善畵)에서 화원으로서는 마지막 품계인 종6품 제한을 깨고 정4품 호군(護軍)까지 승진했다.평소 안평대군과 가까이 하면서 중국 고화들을 섭렵,자신의 화풍을 이룩했다.성현(成俔)은 ‘용재총화’에서 “고래의 명적(名籍)을 많이 보고 연구해 그 요체를 터득하고 고금명가의 장점을 규합 절충해 자기 것으로 소화하였으며 산수화가 빼어나다”고 그를 평가했다.안견의 작품으로는 ‘몽유도원도’‘적벽도’‘사시팔경도’ 등이 전해지는데 확실한 것은,안평대군(安平大君)이 꿈 속에서 본 아름다운 도원(桃園)의 모습을 들려주며 그리게 했다는,‘몽유도원도’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안평대군은 세종대왕의 셋째아들로 이름은 용(瑢),호는 매죽헌(梅竹軒) 비해당(匪懈堂)을 두루 썼다.세종 10년(1428년) 대군으로 봉해졌고 맏형인 문종이다스리는 동안 배후에서 실력자 구실을 하다가단종 1년(1453년) 둘째형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으로 김종서(金宗瑞)등을 죽일 때 강화로 귀양갔다가 사약을 받았다.시문서화(詩文書畵)에 능한 당대 최고의 명필로 꼽혀 중국 사신들이 올 때마다 글씨를얻어 갔다고 한다.대표작으로 현재 일본 텐리(天理)대학이 소장하고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발문(跋文)’과 국보 제238호 ‘소원화개첩(小苑花開帖)’이 전해진다.
최근 그림으로,글씨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교유하던 안견과 안평대군의 작품이 공개돼 관심을 끈다.550여년 만에 공개된 안견의 ‘고잔도장축도(古棧道長軸圖)’와 오는 29일부터 예술의전당 서예관에서열리는 ‘한국서예 2000년전’에서 선보일 안평대군의 친필 ‘칠언절구’와 ‘춘야연 도리원 서(春夜宴 桃梨園 序)’ 등이다.
‘고잔도장축도’는 당 현종이 ‘안록산의 난’(755년)을 만나 험한산길로 피난가는 모습을 비단 바탕에 수묵과 채색으로 그린 작품이다.그림의 크기는 가로세로 219×25.5㎝,전체로는 585×31.5㎝ 두루마리 표구로 군청색비단 표지에 ‘안견고잔도장축도’라고 씌어 있다.안평대군의 ‘칠언절구’는 감지에 금니(金泥)로 외로움을 쓴 서정시이며 ‘춘야연 도리원 서’는 검은 종이에 역시 금니로 봄의 정원에서 형제들과 우애를 다지는 내용이다.전해지는 작품이 많지 않은조선 초기 대표적 화가와 명필의 작품이 한꺼번에 공개된 점은 기뻐할 일이지만 명확하게 진위를 밝히는 것도 소홀해서는 안되겠다.
■박찬 논설위원parkchan@
또 안평대군은 세종대왕의 셋째아들로 이름은 용(瑢),호는 매죽헌(梅竹軒) 비해당(匪懈堂)을 두루 썼다.세종 10년(1428년) 대군으로 봉해졌고 맏형인 문종이다스리는 동안 배후에서 실력자 구실을 하다가단종 1년(1453년) 둘째형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으로 김종서(金宗瑞)등을 죽일 때 강화로 귀양갔다가 사약을 받았다.시문서화(詩文書畵)에 능한 당대 최고의 명필로 꼽혀 중국 사신들이 올 때마다 글씨를얻어 갔다고 한다.대표작으로 현재 일본 텐리(天理)대학이 소장하고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발문(跋文)’과 국보 제238호 ‘소원화개첩(小苑花開帖)’이 전해진다.
최근 그림으로,글씨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교유하던 안견과 안평대군의 작품이 공개돼 관심을 끈다.550여년 만에 공개된 안견의 ‘고잔도장축도(古棧道長軸圖)’와 오는 29일부터 예술의전당 서예관에서열리는 ‘한국서예 2000년전’에서 선보일 안평대군의 친필 ‘칠언절구’와 ‘춘야연 도리원 서(春夜宴 桃梨園 序)’ 등이다.
‘고잔도장축도’는 당 현종이 ‘안록산의 난’(755년)을 만나 험한산길로 피난가는 모습을 비단 바탕에 수묵과 채색으로 그린 작품이다.그림의 크기는 가로세로 219×25.5㎝,전체로는 585×31.5㎝ 두루마리 표구로 군청색비단 표지에 ‘안견고잔도장축도’라고 씌어 있다.안평대군의 ‘칠언절구’는 감지에 금니(金泥)로 외로움을 쓴 서정시이며 ‘춘야연 도리원 서’는 검은 종이에 역시 금니로 봄의 정원에서 형제들과 우애를 다지는 내용이다.전해지는 작품이 많지 않은조선 초기 대표적 화가와 명필의 작품이 한꺼번에 공개된 점은 기뻐할 일이지만 명확하게 진위를 밝히는 것도 소홀해서는 안되겠다.
■박찬 논설위원parkchan@
2000-12-19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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