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래 평생 통일을 바라면서 흰 옷만 입고 지냈디.이런 날이 올 줄알았어…” 지난 18일 제2차 이산가족 방북단으로 선정돼 둘째딸 박영실(朴英實·67)씨를 만나게 된 김덕희(金德姬·89·여)할머니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할 수 없어 계속 기도만 드렸다.
평북 선천에서 살던 김 할머니는 남편 박희욱(朴熙昱·97년 작고)씨,6남매와 함께 지난 48년 봄 서울로 왔다.지주 출신에 기독교 신자라북에서 살기 쉽지 않았던 김 할머니 가족들은 “젊은 사람들만 잠시몸을 피하라” 는 집안 어른들의 말에 거의 맨몸으로 고향을 떠났다.
서울 용산구 해방촌 판자촌에 자리를 잡고 닥치는 대로 일했으나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활달한 성격이었던 영실씨는 48년 가을 “날씨도 추워지는데 고향집에 가서 이불과 옷가지를 가져오겠다”면서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향으로 향했다.그것이 마지막이었다.자나깨나 영실씨만 생각했던 김 할머니는 지난 60년 이북 출신 기독교신자들과 ‘민족을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신자들끼리 혈서도 썼다.
40년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기도회를 갖고,날마다 정오와 오후 3시에는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김 할머니는 ‘백의민족’의 통일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지금까지 속옷,겉옷 할 것 없이 흰 옷만 입고 지냈다.쪽진 머리도 풀지 않았다.
“딸만 만난다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다시 두 손을 모았다.
전영우기자 ywchun@
평북 선천에서 살던 김 할머니는 남편 박희욱(朴熙昱·97년 작고)씨,6남매와 함께 지난 48년 봄 서울로 왔다.지주 출신에 기독교 신자라북에서 살기 쉽지 않았던 김 할머니 가족들은 “젊은 사람들만 잠시몸을 피하라” 는 집안 어른들의 말에 거의 맨몸으로 고향을 떠났다.
서울 용산구 해방촌 판자촌에 자리를 잡고 닥치는 대로 일했으나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활달한 성격이었던 영실씨는 48년 가을 “날씨도 추워지는데 고향집에 가서 이불과 옷가지를 가져오겠다”면서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향으로 향했다.그것이 마지막이었다.자나깨나 영실씨만 생각했던 김 할머니는 지난 60년 이북 출신 기독교신자들과 ‘민족을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신자들끼리 혈서도 썼다.
40년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기도회를 갖고,날마다 정오와 오후 3시에는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김 할머니는 ‘백의민족’의 통일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지금까지 속옷,겉옷 할 것 없이 흰 옷만 입고 지냈다.쪽진 머리도 풀지 않았다.
“딸만 만난다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다시 두 손을 모았다.
전영우기자 ywchun@
2000-11-20 2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