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홍석천씨가 그의 성적 정체성(동성애적 취향)과 관련해 언론으로부터 아웃팅 당했다.한 인터뷰에 따르면,그는 차근차근 자신의자발적인 커밍아웃(사회적으로 공인받지 못하고 있던 자신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행위)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고 한다.커밍아웃의 전후 사정과는 상관없이 홍씨는 자신이 맡고 있던 어린이프로그램 ‘뽀뽀뽀’에서 퇴출당했다.“윗분들이 부담스러워한다”는얘기를 전해들은 홍씨는 “그러면 그만 두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고정적인 직위가 아닌 연예인으로서는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대중매체나 일상의 직장에서 윗분이라는 표현을 접한다.‘윗분의 뜻’이라는 말로 많은 일들이 설명없이 구체적인 해명없이도 통용된다.그럴 때마다 궁금한 게 ‘그 윗분이라는 사람이 도대체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실제로 어떤 말을 했는지,과연 그런의도로 한 말인지’ 혹시 ‘과잉해석은 아닌지’ 궁금하다.
이미지가 생명인 대중스타에게는 대중의 취향이 결정적인 변수이다.
그러나 대중스타란 또한 대중의 취향자체를 변화시키는 힘을 갖는 존재이기도 하다.대중에게 호소력이 있어서 스타가 되기도 하지만 스타라는 존재는 또한 대중의 취향이나 관점을 유도하는 힘이 있다.따라서 홍씨의 경우,그의 개인적인 성적 정체성과 상관없이 현행의 자리를 그대로 유지한다면,그것은 성적 소수자들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의 어린이들이 성인이 될 때쯤이면 개인들의 성적 정체성은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그런 어린이들에게 이분법적논리에 의해 사람들을 ‘정상/비정상’으로만 나누는 그런 교육이과연 바람직할까?문제는 성적 소수자의 경우만이 아니다.정상/비정상이라는 이분법으로 사람들을 심판하는 우리 사회의 지배논리는 자신이 정상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약자나 소수자들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시각을 강화시키고 있다.미혼모,동성애자,장애인,외국인 취업노동자 등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협한 시각을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지 묻고 싶다.
사람들은 누구나 입으로는 타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사람들간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동성애자,장애인,외국인 취업노동자 등을 바라보는 시각은 존중이나 인정과는 거리가 멀다.우리 사회에서 타인 존중의 의미는 실제로는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자신이 정상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간의자기네들끼리의 존중과 인정일 뿐인 경우가 많다.나와 유사한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인정은 굳이 가르칠 필요도 강조할 필요도 없다.그것은 시키지 않아도 이미 누구나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양성을 인정하라고 강조하는 까닭은,나와는 다른 사람들이혹은 내가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을 수있기 때문이다.그들이 비록 소수일 뿐일지라도 그리고 내 상식이나이해력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경우라도,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이것은말로 가르쳐지는 교육이 아니라 체험으로 습득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이미 프랑스에서는 동성애자들도법적인 부부로 인정되고 법적혜택을 받고 있다.그런데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차이를 차이로 보지않고 비정상으로 보도록 가르칠 것인가? 동성애자이니까 어린이 프로를 맡기기에 곤란하다는 주장에 대해,나는 오히려 동성애자도 정상인이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어린이들에게 체험으로 가르쳐주기 위해서라도 홍씨가 그 프로를 그대로 맡기를 바란다.차이를 비정상으로 보지 않도록 해주는 훈련이 필요하다.
■ 김 성 옥 장안대 교수·철학
고정적인 직위가 아닌 연예인으로서는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대중매체나 일상의 직장에서 윗분이라는 표현을 접한다.‘윗분의 뜻’이라는 말로 많은 일들이 설명없이 구체적인 해명없이도 통용된다.그럴 때마다 궁금한 게 ‘그 윗분이라는 사람이 도대체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실제로 어떤 말을 했는지,과연 그런의도로 한 말인지’ 혹시 ‘과잉해석은 아닌지’ 궁금하다.
이미지가 생명인 대중스타에게는 대중의 취향이 결정적인 변수이다.
그러나 대중스타란 또한 대중의 취향자체를 변화시키는 힘을 갖는 존재이기도 하다.대중에게 호소력이 있어서 스타가 되기도 하지만 스타라는 존재는 또한 대중의 취향이나 관점을 유도하는 힘이 있다.따라서 홍씨의 경우,그의 개인적인 성적 정체성과 상관없이 현행의 자리를 그대로 유지한다면,그것은 성적 소수자들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의 어린이들이 성인이 될 때쯤이면 개인들의 성적 정체성은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그런 어린이들에게 이분법적논리에 의해 사람들을 ‘정상/비정상’으로만 나누는 그런 교육이과연 바람직할까?문제는 성적 소수자의 경우만이 아니다.정상/비정상이라는 이분법으로 사람들을 심판하는 우리 사회의 지배논리는 자신이 정상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약자나 소수자들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시각을 강화시키고 있다.미혼모,동성애자,장애인,외국인 취업노동자 등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협한 시각을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지 묻고 싶다.
사람들은 누구나 입으로는 타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사람들간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동성애자,장애인,외국인 취업노동자 등을 바라보는 시각은 존중이나 인정과는 거리가 멀다.우리 사회에서 타인 존중의 의미는 실제로는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자신이 정상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간의자기네들끼리의 존중과 인정일 뿐인 경우가 많다.나와 유사한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인정은 굳이 가르칠 필요도 강조할 필요도 없다.그것은 시키지 않아도 이미 누구나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양성을 인정하라고 강조하는 까닭은,나와는 다른 사람들이혹은 내가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을 수있기 때문이다.그들이 비록 소수일 뿐일지라도 그리고 내 상식이나이해력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경우라도,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이것은말로 가르쳐지는 교육이 아니라 체험으로 습득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이미 프랑스에서는 동성애자들도법적인 부부로 인정되고 법적혜택을 받고 있다.그런데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차이를 차이로 보지않고 비정상으로 보도록 가르칠 것인가? 동성애자이니까 어린이 프로를 맡기기에 곤란하다는 주장에 대해,나는 오히려 동성애자도 정상인이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어린이들에게 체험으로 가르쳐주기 위해서라도 홍씨가 그 프로를 그대로 맡기를 바란다.차이를 비정상으로 보지 않도록 해주는 훈련이 필요하다.
■ 김 성 옥 장안대 교수·철학
2000-10-0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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