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敬老

[외언내언] 敬老

이용원 기자 기자
입력 2000-09-18 00:00
수정 2000-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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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77세 노인에게 꾸중을 들은 중3학생(15)이 노인을 따라 전철에서 내린 뒤,뒤쫓아가 승강장 계단에서밀어뜨린 사건이 최근 있었다. 등을 차인 노인은 10여m 아래로 굴러떨어져 뇌출혈을 일으켰고 불행히도 이틀 뒤 세상을 떠났다.철부지소년이 욱하는 감정으로 저지른 일이라고는 하나 참으로 있어서는 안될 일이 일어났다. 우리사회의 전통적인 미덕인 경로(敬老)사상이 무너지는 현장을 목격하는 아픔을 느낀다.

충효(忠孝)와 더불어 경로사상은 우리가 오래 가꾸어온 가치관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같은 가치들을 이제는 버려야 할 구시대의 폐습인양 홀대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그 밑바닥에는 충효 등의 기성 가치체계가 지배층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악용돼 왔다는 불신이 깔려 있는 듯이 보인다.그러한 생각을 무조건 틀렸다고만 하기는 어렵다.멀리 조선시대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1960∼1970년대 통치자는 ‘충’을 국가가 아닌 개인에 대한 충성으로 교묘히 변질시킨 바 있다.‘효’가 여전히 가부장적 권위를 지탱하는데 중요한 몫을 한다는 점도확실하다.

그렇더라도 ‘충’과 ‘효’의 본질적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21세기 어느 문명사회건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의 효도를 주요 덕목으로 삼지 않는 곳이 있단 말인가.차이가 있다면 이를 구현하는 방식과 가치의 우선순위 정도일 것이다.‘경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마침 지난해가 유엔이 정한 ‘세계 노인의 해’였다는 사실은 ‘노인 존중’이 전 문명의 공동관심사임을 명확하게 알려준다.다만 이시점에서 고려할 사항은 “나이 많은 분이니 ‘무조건’공경하고 따르자”는 식의 주장이 더이상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왜 노인을‘우대’해야 하는지 기본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노인은 우선 어린이·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약자다.신체·정신적 능력이 쇠퇴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력도 대부분 갖추지 못했다.따라서 약자인 노인을 부축하고 보호하는 일은 우리사회의 의무다.경로 대상인 이 시대 노인들의 삶도 되짚어 보자.올해 만65세(1935년생)가 넘는 분들은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시절에 태어나 소년·청년기에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었다.경제성장기에는 베트남의 정글에서,중동의 열사(熱砂)에서 피땀을 흘려가며 사회적 부를 축적했고 민주화를 뒷받침했다.한마디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형성한 선배일꾼들이다.그들은 젊은 세대에게서 존경받고 보상받을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다.그러므로 우리는 ‘해묵은 가르침’ 때문이 아니라 합리적인 근거때문에 노인을 우대해야 한다.그리고 그것은 장래 우리 자신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2000-09-1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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