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說이 없는 경제를 위하여

[데스크 시각] 說이 없는 경제를 위하여

염주영 기자 기자
입력 2000-05-24 00:00
수정 2000-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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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만큼 ‘경제위기설’이 자주 등장하는 나라도 드물다.일본이 장기호황을 누렸던 지난 80년대에 언론들은 줄기차게 ‘일본경제 위기설’을 제기했다.‘가공(架空)의 위기’를 등장시켜 경제주체들이 미리 대비하도록 경고함으로써 위기를 예방하고 호황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반대다.가장 큰 차이는 집단적 불안심리가 가득차 있을 때,즉 상황이 어려울 때 위기론이 등장한다는 점이다.그 결과 위기를 예방하는 효과도 없진 않지만 대부분은 경제주체들을 더 큰 불안 속으로 몰아넣곤 한다.일본에서와는 달리 위기설이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많은 희생을 치르게 했다.

그런 사례는 수두룩하다.한해에 서너차례씩 굵직굵직한 위기설에 시달리는것이 보통이다.지난해 하반기 이후 등장한 것만 따져보자.지난해 7월 무렵부터 ‘대우관련 위기설’이 표출되더니 10월초 “대우계열사간 자금지원을 차단하겠다”고 한 이헌재(李憲宰)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의 발언이 있자 ‘11월금융대란설’로 확대포장됐다.

그런 다음 올초에는‘2·8 금융대란설’로 간판을 바꿔달았다.곧이어 ‘현대위기설’이 등장했고 지금은 ‘제2 경제위기설’이 유포되는 중이다.조만간 ‘7월 금융대란설’이 고개를 내밀 조짐이고 ‘내년 1월 대란설’이 준비단계(?)에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우리 경제에는 이처럼 온갖 ‘설’(說)들이 꼬리를 물고 생겨났다가 사라지곤 한다.그때마다 경제가 한바탕 요동을 쳤다.내년에도 ‘위기설’이 몇개더 나올 것이다.그런데도 매번 시장이 깜빡 속아 넘어가는 것은 ‘설’마다그럴 듯한 소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불안심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재를 찾아내 자극적인 제목을 붙이면 하나의 ‘위기설’이 생성된다.예컨대 대우와 현대의 위기설은 모두 특정기업의 자금난을 소재로 삼았다.각각 지난해 11월과 올 2월8일을 D-데이로잡았던 금융대란설은 대우채권의 환매(자금인출) 허용시기에 착안한 것이다.대우채권의 환매가 부분 또는 전면 허용되는 시점에 환매요구가 집중되면서금융기관이 연쇄도산할 것이라는 내용을 시나리오로 설정했다.

제2 경제위기설은단기외채비중 확대,원유가 폭등과 미국증시의 폭락,동남아 금융불안 등 국내외의 다양한 소재들을 테마로 삼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밖에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7월 대란설은 채권시가평가제를,내년 1월대란설은 예금 부분보장제 도입과 금융기관 예금보험료율 차등화를 각각 주테마로 삼을 것이라고 한다.

일단 ‘설’이 만들어지면 시장에 급속도로 전파되다가 정해진 시한이 지나면 소리없이 사라지는 것이 보통이다.생존기간은 한두달 정도다.현재 유포중인 ‘제2 경제위기설’처럼 특별히 정해진 시한이 없는 것도 있다.이런 유형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잠복했다가 다시 출몰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각종 위기설이 경제에 지대한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주가·금리·환율 등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3대 가격변수의 폭락 또는 폭등을 야기하는 경제불안의 주범이다.시장을 마비시키는 ‘암적 존재’다.경제주체들이경제실상을 바로 알고 대처하지 못하게 만든다. 시장경제를 꽃피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장을 마비시키는 ‘설’들을 추방해야 한다.

시장경제에서는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체계를 갖추는 것이 선결요건이다.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도 정보의 유통체계가 막혀있는 경우가 허다하다.실물시장은 물론 금융·증권·외환 등 시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이 시장 참여자들에게 차별없이 제때 제공돼야 한다.특히 시장에 불안하게비칠 수 있는 정보일수록 더욱 그렇다.이 점이 바로 정부정책이 투명성과 공개성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염주영 경제팀장
2000-05-2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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