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보도자세 문제없나/(하)서독언론 統獨에 결정적 역할

對北보도자세 문제없나/(하)서독언론 統獨에 결정적 역할

정운현 기자 기자
입력 2000-05-09 00:00
수정 2000-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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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1989/언론! 너는 어디에 가 있었느냐.” 89년 12월 어느 날 동독의 한 여인이 데모 군중 속에서 들고 섰던 한 성토문의 내용이다.이 여인의 절규는 독일 통일 당시 동독 언론의 반통일적 행태와 무책임을 꼬집은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독일 통일은 서독언론이 이끌어낸 것이라는 견해가 있을 만큼 통일과정에서서독언론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서독언론은 80년대말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동유럽의 저항운동 등 국제질서의 추이를 분석하면서 내부적으로 독일인들이 그같은 환경변화를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또대외적으로는 고르바초프 등 주변국 정상이나 망명자들을 지면에 등장시켜통독문제가 중요문제로 설정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서독언론은 통일문제를 주창하면 할수록 실현 가능성이 멀어진다는 아이러니를 일찍부터 인식하고 통일문제에 신중하게 대처해 왔다.통일을 큰 목소리로 외쳐온 우리 언론과는 큰 차이가 있다.특히 서독언론들은 동독 관련 보도에서 왜곡이나 체제우위를 선전하는 보도를 하지 않았음은 물론 동독을 ‘특별한 집단’으로 취급하지 않았는데 이는 긍정이든,부정이든 북한을 감정적으로 특별 취급해온 우리 언론과는 크게 대조가 된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큰 기여를 한 매체는 신문보다는 방송이었다.신문은 동독의 장벽을 자유롭게 넘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방송은 달랐다.통독 당시동독인들의 서독TV 시청률이 무려 90%를 넘었다는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서독과의 경계에서 멀리 떨어진 관계로 서독TV 시청이 불가능했던 작센 지역을두고 동독 사람들은 ‘무지의 계곡’이라고 부르며 이 지역으로 이사가는 것을 꺼렸다.

방송개발원 이우승 박사는 “서독방송은 동독 주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서독의 공영방송국에 모국어로 통일방송을 의무화함으로써 독일 통일에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말했다.

서독TV가 독일통일에 기여한 것은 바로 정상적인 프로 제작이다.게르하르트담프만(구 서독 마인츠대학 언론학부)교수는 “서독에서 동독으로 방영된 방송들이 단지 동독인들만을 위해 특별제작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당시 동독인들이 본 서독TV는 서독인들이 일상적으로 보는 보통 TV프로그램이었다.대부분의 서독 방송인들은 수백만명의동독인들이 서독의 TV프로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동독의 시청자들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넸는데 이는 동독인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은 것이었다.

72년 동서독 간에 상호 실체를 인정하고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언론교류 역시 본격화됐는데 동독에 주재하던 서독 언론인들은 동독의 실상을 가감없이보도해 동독인들로부터 신뢰를 얻게 됐다.이것이 동독 내부에서 문제가 됐지만 80년대 이후 동독은 서독TV 시청을 인정하게 됐다.이는 당시 동독이 서독의 동방정책과 ‘헬싱키조약’에 따라 언론자유를 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앙대 이정춘(신문방송학)교수는 “서독언론은 당국이 돈을 주고 동독에서정치범을 빼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통독 이후에야 비로소보도하기 시작했다”면서 “우리 언론도 대북관련 보도는 인내를 갖고 신중하게 대처하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2000-05-0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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