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포럼] 베를린 자유대학

[대한포럼] 베를린 자유대학

이기백 기자 기자
입력 2000-03-15 00:00
수정 2000-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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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의 자유대학(Free University)은 독일내 300여개 대학과는 태생적으로 다르다.독일은 중세이후 군주들이 영지별로 학교를 설립,오늘에 이르러 대학들마다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다.

세계대전후 서베를린을 관할하게 된 연합국은 구소련 관할지역에 있는 훔볼트대학에 상응하는 대학의 필요성이 절실했다.서방진영,특히 포드재단이 주도해 1948년 개교한 자유대학은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실현하는데 앞장서 왔다.

냉전시대 서방의 필요에 의해 미군사령부 인근에 설립된 자유대학은 처음부터 200년 전통을 가진 훔볼트대학과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었다.프로이센제국이 설립,언어학자이자 교육개혁가의 이름을 딴 훔볼트대학은 연륜과 더불어법률·의학·철학·신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철학자 헤겔·피히테와 칼마르크스가 이 대학서 강의했으며 아인슈타인등 노벨상 수상자 29명을 배출했다.

서베를린의 자유대학은 그러나 냉전중 자유민주사상의 전파자로서 독보적인위치를 굳혔다.자유대학은 훔볼트대학이 공산정권에 접수된뒤 마르크스주의를강요받자 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탈출해 옮겨옴으로써 짧은 기간내 명문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자유대학은 인문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쌓아 시장경제와 민주제도 발전에 이바지했다.

미국식 캠퍼스 유형을 도입한 자유대학은 냉전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엔 반공산,반동독 학생운동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베를린 봉쇄기간인 63년 케네디미국대통령이 방문해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하고 자유대학에서 메달을 받은뒤 학생들의 반소운동이 절정을 이루자 당황한 연합군측이 이를 완화하도록 학교당국에 압력을 가한 것은 이 대학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그후 학생수가 2만여명으로 늘었으며 베를린 장벽이붕괴된 80년대말에는 5만명에 이르렀다.

학교 건물도 자유대학은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인데 비해 훔볼트대학은 고풍스러운 모습이다.통일후 두 대학 모두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특히 자유대학은 민간단체의 지원이 크게 줄고 학생들이 훔볼트대학을 선호하고 있어려움이 더욱 크다.이같은 어려움은 시대적 변화이기도 하나자유대학의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은 변함 없으리라는 것이 베를린 시민들 믿음이다.

베를린은 유럽 중심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역사적으로 갈등과 화해의 중심무대가 되어 왔다.냉전시대엔 동서의 지도자들이 체제의 우위를 과시하는 무대로,데탕트이후에는 화해와 협력의 현장으로 베를린이 갖는 의미는 크다.

베를린은 장벽의 붕괴라는 상징적 의미때문에 화해와 통일의 현장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독일통일의 배경에는 자유대학과 훔볼트대학이 정신적 뒷받침이되어 왔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 못한다.자유대학은 자유와 민주의 상징이다.

유럽을 순방중이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 10일 자유대학에서 남북정부당국간 대화를 제안한 것은 베를린의 지리적 특성과 자유대학의 상징성을 담고 있어 유럽순방 외교의 절정으로 꼽힌다.

특히 김대통령이 이 대학 교수와 학생 9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독일 통일의 교훈과 한반도 문제’라는 주제로 진행한 연설에서 “베를린 자유대학과이 대학 출신들이 개교이래 동서독간의 화해와 협력,독일통일을 앞장서이끌어온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 “여러분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기위해 이 대학을 찾았다”고 운을 뗀 것은 베를린과 자유대학의 상징성으로인해 의미가 더욱 큰 것으로 평가된다.

김대통령이 “뜻깊은 자유대학을 방문한 이 자리를 빌려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항구적인 평화와 남북간의 화해 협력을 이루고자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며 정부당국간 협력 및 특사 교환 등4가지 ‘베를린선언’을 발표한 것은 극적 감동을 더했다고 하겠다.연설이끝나자 좌석에 앉아있던 교수와 학생들이 기립박수를 보낸 것은 단순히 한외국지도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이 대학의 역사적 배경과 연설이 일치했기때문이라 하겠다.

이기백 논설위원 kbl@
2000-03-15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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